국립 중앙 박물관 탐방기
어제 3시간 관람했는데 반도 못 봐서 오늘은 하루 종일 보려고 오전에 입장했다.
경로표는 공짜인데, 나는 나이가 많이 들어 보인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으므로 장난삼아 매표소에 손을 내밀었다. 나를 흘끔 보더니 표를 준다. 입장하다가 직원에게 말했더니 ‘어르신들이 하도 소리를 질러서’ 손 내밀면 얼른 준다고 했다.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로 구분된 전시실의 각종 생활도구, 무기, 도자기 등을 보며, 선조들의 손길과 숨결이 느껴지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시대 풍속도실에 가니 김홍도, 신윤복의 작품들이 사회상을 잘 묘사하고 있었다. 희로애락을 어찌 그리 해학적으로 그렸는지 감탄사 연발! 내레이션은 빠르고, 배경음악은 커서 잘 알아들을 수 없을 때도 있었다. 아쉬웠지만 ‘경로표로 다시 오지 뭐’하며 나왔다.
전시품들의 설명표지가 조명을 너무 예술적으로 해서 다음에는 돋보기를 꼭 가져 와야겠다고 메모지에 적었다.
조선시대 주민등록증인 호패가 있고, 소 값보다 못한 노비가격 그림도 있고, 담뱃대를 길게 물고 있는 양반그림에는 ‘길수록 신분과 권위가 높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과거제도 그림에는 시험이 열리는 시기, 주어지는 관직 등이 자세히 표시되어 있다. 나는 그 시대에 살았다면 과연 급제할 수 있었을까 생각에 잠겼다.
천연두(마마)는 추사 김정희와 백범 김구선생도 앓았고, 19C말에 일본에서 서양의학 기술 배운 지석영의 노력으로 예방접종이 시행되었다고 적혀 있다.
‘古山子 김정호‘ 영상실에 가니 대동여지도가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 산줄기, 물줄기를 사람의 몸으로 생각하고, 산맥은 뼈대, 강은 핏줄로서 강산에 애정이 넘치게 표현했다. ’세계적으로 빛나는 문화유산‘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단다. 첨단 과학 장비를 이용한 현대지도보다 백두산 부근이 조금 크게 그려졌을 뿐 완벽하다. 도대체 몇 년에 걸쳐 그렸을지 궁금하다. 백성들이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게 디자인 한 것도 놀랍다.
다시 보는 역사 편지 ‘고려 묘지명(墓誌銘)’들을 자세히 읽고나니 나도 써두어야겠다 싶다. 권장하는 의미로 예문까지 붙여 놓았고, 종이와 볼펜도 비치해두었다.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라는 안내문이 있다. <각자 자신의 미래를 상상해보라. 어떤 모습인지, 꿈꾸던 것을 이루고 있을지 상상해보고, ‘먼 훗날의 나와 하는 소중한 약속’을 써보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인돌을 비롯하여 무덤 관련 소장품이 많고, 전통 종교인 불교의 문화재도 무척 많았다.
관람을 끝내고 나오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10여 년 전에 써둔 ‘추억의 전승’을 이 탐방기 끝에 붙여 놓자‘.
2006년 8월 (200자x8매)
추억의 전승(傳承)
시 한 수 떠올리지 않고 그냥 지나칠 수 없음은 분명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차를 세우고 호숫가에 섰다. 잔잔한 수면을 내려다본다.
물 속을 한가로이
산새가 난다.
산 그림자는 차분히 드리웠고
멀리 동산에 아침 해는 솟으려는데
저기 보이는 뚝방 길은 어쩌면
어머니 모시고
할아버지 산소에 가던 그 길인가.
그냥 지나칠 수 없고, 시 한 수 떠 올리지 않을 수 없음은 뚝방 길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인가 보다. 할아버지 산소에 가는 길에는 꼭 저렇게 생긴 뚝방 길이 있었다. 어릴 때 아버지 손잡고 가던 길을, 커서는 그 사이 혼자 되신 어머니 손을 잡아드리며 갔었다.
어머니는 할아버지 산소에 가실 때마다 행복한 모습을 보이셨다. 그리고 내가 어른이 되어 차를 가지고 갔을 때는 흐뭇해 하셨다. 어머니는 당신의 시아버지께서, 장성한 손자가 서울에서 차를 가지고 내려와 할아버지께 성묘 오는 것을 기뻐하실 것으로 믿으시면서, 산소에서 늘 들뜬 기분이 되셨다.
어머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두 분 노인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중 한 분이 당신의 시부(媤父)이신 나의 할아버지시다.
할아버지에 관하여 어머니가 하신 말씀은 대강 이러하다.
할아버지대(代)에 융성하셨던 가세가 막내인 나의 출생 즈음 -아버지의 중년기 시작 경 -부터 기울기 시작하자 어머니는 가계를 도울 결심을 하셨다. 가장 손쉬운 부업이 집에 있는 재봉틀로 한복을 짓는 일이었는데, 바느질 솜씨가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저고리 앞섶의 선이 곱게 되었다는 칭찬 을 나도 여러 번 들은 기억이 난다 - 어머니는 밤이 이슥하도록 옷을 지으셨다.
그런 어느 날 새벽녘에 잠깐 눈을 붙였을 때 꿈에 할아버지가 나타나시어 “악아, 어찌 살래, 어찌 살래”하시며 주머니같이 생긴 것을 주시더라 하셨다. 세상을 떠나신 당신의 시부께서 꿈에 나타나시어 며느리를 걱정해 주신 것인데, 어머니는 너무 황송한 가운데서도 그것을 받아 가슴에 꼭 안았다고 하셨다.
그때 주머니를 황공히 받아 안지 않았으면 가세가 영영 기울 뻔 했다고, 할아버지가 가세를 잡아주신 거라고, 어머니는 확신을 갖고 말씀 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가계의 책임자로서 자식들의 남은 교육 등 ‘의무’를 감당해 내셨다. 그런 중에도 아버지가 남기신 집 한 채는 끝내 지키시면서 버티어 내셨다. 그 집은 당신의 세월을 끝까지 증언한 뒤에 당신 자식들에게까지 남겨졌다….
어머니는 할아버지의 인품이 인자하시고 격조 높으신 어른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그윽한 그리움을 눈가에 담으셨다. 그리고 해마다 봄철에는 온 집안 권속들을 여러 대의 마차에 나누어 태우고 꽃놀이 행차를 나가실 만큼 풍류도 아시는 어른이라고 회상하셨다.
어머니가 존경하신 또 한 분 노인은 ‘촛불아래 책을 읽던 노인’이다. 내가 초등하교 1학년 때였다. 그날 나는 어머니를 따라 D병원에 갔었다. 내 이종사촌이 되는 아기가 입원을 하여 찾아보게 된 2인용 병실의 옆 침대에는 노인 한 분이 책을 읽고 계셨다. 병실은 정전이 되어 두 침대에는 촛불이 한 개씩 놓였는데, 침대위에 꿇어앉은 자세로 책을 읽는 노인은 병실에 그 누가 들어와도 전혀 방해받지 않는 집중력으로 책에 몰두해 있었다.
6.25전쟁 직후인 그 당시는 전력 사정이 나빠서 종합병원에도 정전이 잦았다고 나중에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날 밤이 지나고 다음 날 수술을 받은 그 노인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 그 분은 자신이 그리 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마지막으로 수술이나 한 번 해보자는 주위의 안타까움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하셨다.
소생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수술 전 날 밤에 독서에 빠질 수 있었던 그 분은 어떤 분이었을까? 나는 그 노인을 그날 한 번 보았으나 어머니는 여러 번 보셨는데, 무서운 집념으로 책을 읽으시더라 하셨다.
어머니는 그 노인의 사망 소식을 눈물을 글썽이며 내게 전해 주셨다. 그리고 그 분을 존경한다는 말씀을 내가 성장하는 동안 여러 번 하셨다. 지금 그 노인의 영상을 떠올리면서 나는 그 분이 읽던 책이 무슨 책이었을까 몹시 궁금하지만 어머니에게 그 말씀은 듣지 못하였다. 어머니가 가신 지금 그것은 알 길이 없다.
일찍이 어머니가 한복을 지으실 때 호롱불빛 아래서 반짇고리 뚜껑을 베고 동화책을 보던 나는 중학생이 되어서는 쌍 촛대에 불을 밝히고 공부 했다. 초등학교 때 이미 나빠지기 시작한 시력을 걱정해서 어머니는 늘 쌍 촛불을 켜 주셨다.
돌이켜 보면, 책을 가까이 하는 내 버릇은 어머니의 그 말씀, ‘촛불아래 책을 보던 그 노인을 존경하고 있다.’는 바로 그 말씀 때문은 아닌지, 어머니를 회상할 때마다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어머니는 세월이 흘러 당신 자신이 그 노인의 나이가 되었을 때 만학의 집념을 불태우셨다. 우리나라에 ‘노인대학’이 생기면서 어머니는 그 1회 졸업생이 되신 것이다. 76세에 선종하신 어머니가 63세이셨을 때이다.
나는 어머니의 노인대학 수강노트를 유품으로 간직하고 있다.
‘76년 3월에 시작되어 1년간, 강의 시간별로 꼬박꼬박 기록되어 있는 그 노트에는 ‘행복이란 무엇인가, 가정의 합리화, 자연보호, 신토불이, 사회복지문제, 노인의 역할과 지혜’등의 제목아래 강사이름과 강의 내용이 어머니의 달필로 빽빽이 채워져 있다.
한문학, 사회학, 역사, 현대문학 등의 강의 내용은 비록 높은 수준은 아니라 해도 당시 어머니의 지식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을 것으로 보이며, 어머니는 그것들을 벅찬 가슴으로 수강하셨을 것이다.
한문학 시간의 노트내용은 내가 풀이할 수 없을 정도여서 고개가 숙여진다. 어머니는 소학교만 나오셨지만 한문은 서당에서 따로 배우셨던 것이다.
어머님 가신지 벌써 5년. 두 분 노인은 어머니에게 잊지 못할 분이셨고, 어머니의 그 추억은 나에게 전승(傳承)되어 나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
가슴에 남아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고, 머리에 남아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 있다. ‘꿈속의 할아버지’는 어머니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신 정신적 지주로서, 내 가슴 속에 오래 남아 있을 것이며, ‘촛불노인’은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해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철학적 명언의 실천자로서, 내 머리 속에 오래토록 기억될 것이다.
1994년 가을, (200자x18매)
'사랑방 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귀족의 작위와 ... 술의 작위 (0) | 2006.09.09 |
---|---|
[스크랩] 부부생활의 6가지 법칙 (0) | 2006.09.01 |
[스크랩] 미숙한 사람 , 성숙한 사람 (0) | 2006.08.27 |
[스크랩] 법정스님이 설하는 중년의 삶 (0) | 2006.08.27 |
[스크랩] 사랑의 유효기간 (0) | 2006.08.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