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스크랩] 슬픔의 미학 - 소설가 전경린의 글 모음

tlsdkssk 2006. 8. 27. 10:05

슬픔의 미학.. 소설가 전경린의 글 모음.



네 몸엔 아직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겠지.
난 네게 상처를 입히고 싶지 않아..
첫 경험이란 어떤 경우에도 여자에겐 상처이지.
내가 너를 갖고 난 뒤 내일 떠나면 넌 나중에 깊은 원한을 갖게 될 거야.

(꽃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中)





반지하 싱크대 공장 옆 공터를 아무 생각도 없이 바라보고 있는데,
느닷없이 배를 걷어차인 듯 욱, 하고 울음이 쏟아졌다.
나는 참으려고도 하지 않고 허엉허엉 울었다.
때로 눈물도 허기처럼 달래기만 할 수는 없는것이다.

(사막의 달 中)






난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를 영원히 잊지 않을 것 같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가 자신의 감정과 아무런 상관도 없다고 부인한 그 낯선 섬을 통해서...
그 연악한 점막은 고통이 뭉친 것처럼 딱딱하고, 슬픈것처럼 부드러웠다..

(꽃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中)





생은 말라버린 가죽 같은 저토록 늙은 얼굴을 내게 덮어씌울수도 있었다.
한 남자와 평생을 산다 해도,
다른 나라의 낯선 섬을 가진 그를 나는 끝내 알 수가 없을 것이다.

(꽃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中)



나를 떠나면서 아들은 걷잡을수 없이 자랄 것이고,
나는 달걀 속의 노른자위처럼 곱던 아들의 몸에
불꽃같이 거친 비늘이 돋는 것을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어미의 몸 안에서 누구나 한때는 고통 모르는 담수어였던 모든 아들들...

(남자의 기원中...)





스무 살들 이후로 제대로 연애를 해보지 못했어.
사랑이란 스무 살 때나 가능한 에너지인 거 같애.
그때라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한 여자에게 걸 수도 있었을 거야.

(남자의 기원中...)





나는 반했다는 관용구에 대해 막연하지만,
김이 서린 차가운 유리창에 누군가의 이름 하나를 써넣는 것 같은 뭉클한 느낌을 감지했었다..

(낯선 운명中...)





"연아, 승일랑은 다 잊거라. 절대로 승일랑은 다시 보지 말거라.
사는 게 아무리 얄궂어져도, 알것제?
다 잊고, 지금은 눈바람 치는 밤길을 지난다 생각하고 모진 맘으로 살아라.
니 눈만 바로 뜨면 아무리 어두워도 길 하나는 보이지 않던?
힘들어도 다른 마음 먹지 말고 그 집에다 마음을 붙이거라.
남편한테 정을 주고 자식새끼한테 마음을 붙여 세월을 보내다 보면 일은 어찌 풀려도 풀리니라."

뼈 마디 사이로 칼날을 세운 습한 바람이 휭 불어왔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많은 유릿조각을 삼켰던 것일까..
목 안에서 피비린내가 올라왔다..

(사막의 달 中...)





그날 밤
우리는 거실 소파에서 건조한 섹스를 했다.
건조한 섹스란 나이프와 포크 부딪치는 소리만 나는 식욕없는 식사같은 것.

(새는 언제나 그 곳에 있다 中...)



스무 살 땐 누구나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기 식대로 살기 위해 두리번거리고, 검은색 트렁크를 들고 아주 멀리 떠나기만 하면,
완전히 다른 생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서른 살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주 먼 곳에도 같은 생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안다.

(새는 언제나 그 곳에 있다 中...)



*작품*
1. 김성호, 무제
2. 김성호, 무제
3. 이숙자, 보리밭
4. 천경자, 내가 죽은뒤
5. 김성호, 무제
6. 김성호, 무제
7. 김성호, 무제
8. 김성호, 무제


출처 : 슬픔의 미학 - 소설가 전경린의 글 모음
글쓴이 : 블랙로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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