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Valediction: Forbidding Mourning
by John Donne
![](https://img1.daumcdn.net/thumb/R460x0/?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planet%2Ffs10%2F22_2_10_26_72SNY_11147104_1_135.jpg%3Fthumb&filename=135.jpg)
현인이 조용히 세상을 떠나며
"가야지"하고 제 영혼에 속삭이듯이
그들을 아쉬워하는 친구들조차
"이제 숨이 넘어가네," "아직 아닌데," 혼돈하듯이
그렇게 우리도 헤어지되, 소란은 삼갑시다
눈물의 홍수도 한숨의 태풍도 부르지 맙시다
범인들에게 우리의 사랑을 알림은
우리 기쁨에 대한 불경일지니
지구의 떨림은 피해와 공포를 부르고
사람들은 지진의 행태와 의미를 추측합니다
하지만 양반구(兩半球의) 전율은
둘을 더 멀게 할 뿐, 죄는 없습니다
지루한 연인들의 사랑은
(그 영혼이 감각으로 이루어져)
이별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사랑의 요소들도 떠나가기 때문입니다
하오나, 우리는, 너무도 고귀한 사랑으로 인해
이별이 무언지 아지 못합니다
마음속 깊이 다져진 우리 사랑은
눈과 입술과 손의 이별도 두렵지 않은 까닭입니다
마음속 깊이 다져진 우리 사랑은
우리 두 영혼은, 따라서, 하나입니다
비록 나는 가야 하오나, 내가 감내하는 것은
헤어짐이 아니라, 확대됨을 믿기 때문입니다
마치 공기처럼 얇게 다져진 황금과도 같이
영혼이 둘이라면, 그것은 둘입니다.
마치 딱딱한 두 개의 콤파스가 둘이듯이
그대의 영혼은 고정된 발, 움직일 기색이 없으나
다른 발이 움직이면, 그때서야 움직입니다
그리고 그 발은 중앙에 있다가
다른 발이 멀리 떠나갈 때
몸을 기울여 그 발을 걱정합니다.
그리곤 그 발이 돌아올 때, 바로 일어섭니다
그대는 내게 그러한 존재입니다
나는 다른 발처럼 비스듬히 달려야 하나
그대의 굳건함이 내 원을 온당하게 하며
시작한 그 곳에서 끝내게 해주오리다
![](https://img1.daumcdn.net/thumb/R460x0/?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planet%2Ffs8%2F22_2_10_26_72SNY_11147104_1_111.jpg%3Fthumb&filename=111.jpg)
여기까지만 읽어도 좋다..
하지만 좀더 이해가 필요하면 ..
지루하지만 .. 아래글을 읽어야 하지 않겠는가...
왜냐면
이시의 속살일수도 있으니깐..
충고: 흐느끼지 말기 ...
제목부터 좋다...
형이상학의 천재. 희대의 방탕아..
John Donne의 시 중, 가장 유명하고 찬반을 불러일으킨 시이다.
역시 Donne 나름대로의 기이한 상상력과 역설이
시 전편에 가득하다....
"So let us melt"의'melt"에서 시작된 이미지가, '황금,' '지구의.'
그리고 '콤퍼스'가 그려낸 "원"의 이미지까지. . .
그는 분방하면서도, 체계적으로 이미지와
이미지를 연결시키고 있다.
물론 이 시의 일차적인 주제는 "완벽한 사랑"이고,
그 상징으로서의 '원'의 이미지는 시의 구조를 완성시켜주고 있다.
즉 '동반구.' '서반구'의 동양적 결합(음양의 조화)은 '지진'으로 인해,
이별을 겪을 수는 있으나, 지진은 지구의 영역(즉 사랑의 영역)을
넓힐뿐(중세적 사고방식으로 지진은 지구의 성장을 낳는다),
결국 둘 사이의 사랑에는 어떤 변화도 없다.
그리고 사랑의 본질이 육체적이라면, 이별은 치명적이나,
사랑이 마음과 마음으로 이어져 있다면,
서로 멀어질수록 사랑의 영역이 확대될 뿐 아니라,
동시에 영원하리라는 식으로 논리가 전개된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사랑은 황금이 녹아(melt) 공기처럼 늘어나,
그 양극이 무한히 멀어지듯이, 이별은 헤어짐이 아니라,
사랑의 영역이 무한히 확대되어간다는 의미인 것이다.
이미 이 정도만 하더라도,
Donne은 이미 17세기의 시적 기교를 초월하였다.
![](https://img1.daumcdn.net/thumb/R460x0/?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planet%2Ffs3%2F22_2_10_26_72SNY_11147104_0_48.jpg%3Fthumb&filename=48.jpg)
하지만, 그의 매력은 지금부터이다. ..... .
실제로 이 시는 바람둥이인 Donne이 그의 아내에게 던지는
'충고'의 형식을 띠고 있다.
아내는 Donne의 외출을 반가워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 .
그 친구는 나가기만 하면 사고(?)를 치기 때문이다.
그런 아내의 반감에 대한 그의 대답은. . . 결국. . .
"징징대지 마라, 네가 그렇게 징징대면,
내가 집에 들어오고 싶은 생각이 나겠냐...
이 지겨운 집구석에.. ....
남성은 어쩔 수 없이, 외도해야 하는 존재
('roam,' 'obliquely run'은 우리말로 '바람 피우다'의 의미인 것). . .
그렇다 하더라도, .....콤파스의 고정된 발인 아내가,
남편과 달리, 가정을 버리지 않고
제 자리를 지켜줄 때,
남편은 결국 조강지처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And makes me end where I begun)
그대의 굳건함이 내 원을 온당하게 하며
시작한 그 곳에서 끝내게 해주오리다
Donne의 기발함은 8연의 마지막 행에서
그 위력을 최대로 발휘한다-....
![](https://img1.daumcdn.net/thumb/R460x0/?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planet%2Ffs3%2F22_2_10_26_72SNY_11147104_0_47.jpg%3Fthumb&filename=47.jpg)
And grows erect, as that comes home.
Donne의 시어 선택은 기가 막히다.
그는 콤파스가 똑바로 선다는 표현을 'stands erect'가 아닌
'grows erect'로 살짝 바꾸어치기 함으로써,
그리고 'grows erect'의 주어를 생략함으로써,
이 시의 의미를 결정적으로 왜곡시킨다.
만일 그 주어가 '아내'라면 남편의 귀가와 함께 마음을 추스르는
아내의 모습 정도로 해석되겠지만,
그 주어가 바람둥이 남편이라면..
결국 그것은 "내가 집에 돌아올 때, 너를 보고 (내가)
흥분(grows erect)하지 않는다면,
그게 집이냐...라는 뜻이 된다...
솔직한 남성의 성의식을 둘러대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한 명품이다....
물론 서랑의 본질에 전부가 성이라는 개념으로 보는 것은
미루고 존단의 개념으로 본다면 매력적인 의식이다
어쨌던 사랑에는 성이라는 개념도 아주 중요한
구성체임을 감안하면..
아무튼..
여성의 관점에서 볼 때,
Donne은 그리 이미지좋게 볼수는 없겠다....
![](https://img1.daumcdn.net/thumb/R460x0/?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planet%2Ffs10%2F22_2_10_26_72SNY_11147104_1_134.jpg%3Fthumb&filename=134.jpg)
중요한건...
16세기의 구태의연한 남녀관계--
남성은 끊임없이 구애하고,
여성은 끝까지 거절 또는 정조관념에 사로잡혀
마음을 열지 않음에 환멸을 느끼고,
인간과 인간으로서의 남녀관계를 구축한 인물이다. ....
가장 고귀한 사랑은 이상적이고,
신비화된 그런 사랑이 아니라,
남녀가 실제적으로 육체적으로 나누는 그런 사랑이
인간계에서 가장 고귀한 사랑이라는,
사랑의 현대적 관념이 그로 인해 비롯되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