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스크랩] 행복이 담긴 마음씨 박씨를 가져다 주는 돌부처님

tlsdkssk 2006. 4. 28. 21:29
행복이 담긴 마음의 박씨를 가져다 주는 돌부처님
안동 제비원 마애불
    임윤수(zzzohmy) 기자   
▲ 예전과 같지 않아 봄이 되어도 강남에 간 제비를 보기는 힘들어졌지만 안동 제비원엘 가면 언제든 부처님 가피 가져다 줄 마애부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 임윤수
그냥 바위로 보면 한낱 불상 그려진 바윗덩이지만 불심으로 바라보면 바위 몸을 한 부처님이 마애불입니다. 마애불을 한자로 쓰면 갈 마(磨), 모나다 애(崖), 부처 불(佛)로 "암벽이나 구릉에 새긴 불상, 또는 동굴을 뚫고 그 안에 조각한 불상"을 일컫는 말입니다.

돌에 문양을 양각하거나 음각하는 데도 여러 가지 기법이 있습니다. 정으로 쪼아 문양을 넣을 수도 있고, 뭔가로 긁어내 문양을 새길 수도 있습니다. 거칠게 그려 넣을 수도 있고 실물인 듯 섬세하게 그려 넣을 수도 있습니다. 바위에 불상을 새겨 넣은 마애불은 한자에서 알 수 있듯 잘라 내거나 쪼아내는 기법보다는 아주 조금씩 갈아내 문양을 새겨 넣는 것이 정법인 듯합니다.

▲ 불상에 호 불호가 어디 있겠냐마는 분별심 가득한 세속인의 눈으로 보기에 제비원 부처님은 정말 미남형입니다. 분단장까지 한 듯 곱기만 합니다.
ⓒ 임윤수
조각을 할 수 있는 재료는 다양합니다. 누구든 초등학교 때 한번쯤은 해보았을 고무판이나 목판조각처럼 고무나 나무도 조각의 재료가 되지만 금이나 은 또는 동합금과 같은 금속이나 돌멩이도 조각품의 재료가 될 수 있습니다. 같은 조각품이라도 그 재료에 따라 특성이 다릅니다.

고무나 나무를 조각할 때는 조각칼도 용도에 따라 창칼, 둥근칼, 끌칼, 세모칼 등 매우 다양합니다. 그러니 적당한 조각칼을 이용해 삼각 홈을 한 번에 파거나 둥그스름한 곡선을 한꺼번에 그리며 문양을 새길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금속재료도 적당한 도구만 있으면 얼마든지 곡선의 문양을 그려 넣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돌은 그렇지 않습니다. 돌에 새겨지는 어떤 문양도 그것들은 점점이 쪼아 내거나 조금씩 갈아서 새겨 넣은 문양일 뿐입니다.

다른 재료들은 인성(靭性)이라고 하는 끈끈한 특성이 있어 웬만큼 곡선으로 가공해도 부서지거나 끊어지지 않아 곡면가공이 가능하지만 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마디마디, 아니 알알이 끊어지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돌에 새겨진 곡선은 점이 연결된 점들의 연결선이라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일 듯싶습니다.

돌에는 또한 결이라는 게 있습니다. 나무에 결이 있듯이 돌에도 결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돌에 문양을 넣는다는 건 여느 재료들에 문양을 새기는 것 보다 조심스럽고 까다롭습니다. 자칫 실수라도 하면 전체가 쪼개지거나 공들여 새긴 문양이 한꺼번에 떨어져 나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 계단석을 올라서면 석등인지 탑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석등이 있습니다. 석등에는 사람들의 소원처럼 작은 돌들이 가득 올려져 있습니다.
ⓒ 임윤수
마애불은 이렇게 까다롭고 지극한 정성이 요구되는 석조기술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커다란 돌에 매달려 행여나 잘못될까 하는 조바심으로 벼루에 먹 갈듯 조금조금 새겨 넣어야 합니다. 석공이 망치질을 하고 있으니 언뜻 보기에는 쪼아내듯 보이지만 그건 쪼아내는 게 아니라 갈아내는 동작을 그렇게 할 뿐입니다.

정에 망치질을 하며 딴 생각을 하거나 한눈이라도 팔면 한번 정 맞을 곳이 두세 번 정을 맞게 되니 제 문양이 나올 리 없습니다. 손에 물집이 잡히고 힘이 든다고 두 번 정 갈 곳을 한번이라도 건너뛰면 이 또한 제대로 된 문양이 나올 리 없습니다.

그러니 바위에 불상을 암각한다는 건 고행의 실천이며 구도의 기원입니다. 무리를 해서도 안 되고 과신을 해서도 안 되지만 여인네와의 정분을 떠올려서 호흡을 거칠게 해서도 안 됩니다. 숨죽인 듯, 잠자는 듯, 쓰다듬듯, 애무하듯 그렇게 조금조금 갈고 닦아가며 새겨 넣을 혼신이며 정성이어야 합니다.

▲ 계단을 올라서 왼쪽 길을 따라 들어가면 돌부처님 앞에 마련된 바위 법당으로 가게 됩니다.
ⓒ 임윤수
안동서 5번 국도를 따라 영주 쪽으로 가다 보면 시가지를 벗어나 얼마 지나지 않아 오른쪽으로 활대처럼 휜 구부러지는 길 모롱이, 태화산 기슭에 자리한 거대한 석불이 보입니다. 선형을 바로 잡느라 두 갈래로 갈라진 안쪽 길 모롱이에 있습니다.

대개는 절 이름에 부속물처럼 마애불이 따라다니지만 이곳에 있는 연미사는 이 마애불에 절 이름이 따라 붙을 정도로 마애불이 유명합니다. 연미사라는 절 이름 보다는 안동 제비원마애불이라는 명성이 더 널리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도로에서는 마애불 두상만 또렷이 보일 뿐 불신은 바위에 가려 보이지 않고 연미사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파주 용미리의 용암사마애불, 고창 선운사의 도솔암마애불과 함께 함께 한국 3대 마애불로 손꼽히는 이 마애불을 흔히 안동 이천동 석불 또는 제비원마애불이라고 합니다.

▲ 양쪽으로 갈라선 안쪽으로 들어가면 오른쪽 바위가 부처님이 암각 된 바위입니다. 입구에는 천하장사가 법당을 수호하고 있습니다.
ⓒ 임윤수
한 석공의 갸륵한 정성과 지극한 불심이 새겨낸 바위부처에 무슨 차이가 있겠냐마는 분별심 가득한 세속인의 눈에는 부처님도 잘생기고 못생김, 곱고 거침이 분별됩니다. 용암사마애불이나 도솔암마애불이 좀 더 투박하고 토속적인 느낌이라면 제비원 마애불은 좀 더 세련되고 매끈합니다. 두 마애불에서 느끼는 질감이 선머슴의 거칠거칠한 손길이라면 제비원마애불에서는 곱살한 피부를 가진 규수의 촉촉함을 연상한다면 너무 세속적일지 모르지만 그런 느낌이 듭니다.

제비원마애불은 목각처럼 선형이 또렷하고 때깔이 곱상한 미남형 마애불입니다. 세상을 관조하듯 두 눈은 지그시 감았고 이마의 백호 또한 또렷합니다. 표면을 닦아내고 연지 치장을 했는지 눈언저리와 입술엔 홍조까지 띠고 있습니다. 원래는 삿갓(笠)이 씌워져 있었지만 그 삿갓이 많이 훼손되어 패랭이(平凉笠)를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불룩했던 불두의 육계가 많이 손상돼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 예닐곱 평의 야외법당엔 많은 사람들이 지성을 올린 흔적으로 촛농이 수북했습니다.
ⓒ 임윤수
마애불 뒤쪽으로 3층 석탑이 보이고 앞쪽에는 작은 석비가 보입니다. 바위 앞쪽으로는 잡목들이 자라고 있지만 뒤쪽, 3층 석탑 주변에는 청솔이 울창한 숲을 이뤄 마애불을 한층 돋보이게 합니다.

마애불이 새겨진 바위의 전체 높이는 12.38m나 된다고 합니다. 마애불 전경은 자동차가 거의 왕래하지 않는 구(舊)도로에서 볼 수 있다면 전체 불신은 연미사를 지나 마애불이 있는 바위법당까지 들어가야만 합니다.

도로에 접경한 몇 개의 계단석을 올라서면 석등인지 석탑인지 언뜻 구분되지 않는 특이한 형태의 석물이 양쪽으로 세워져 있습니다.

등빛이 비춰질 수 있는 화창(火窓)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석등이 분명한데 화창위로 옥개석이 3층이나 되는 특이한 형태입니다. 상대석은 물론 화창과 층층의 옥개석엔 누군가 올려놓은 작은 돌들이 소원처럼 무더기를 이뤘습니다.

이 석등을 지나 다시 한 번 계단으로 올라가면 연미사 법당이고, 올라가지 않고 곧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마애불, 바위부처님 앞으로 가게 됩니다. 마애불 쪽으로 가면 거대한 바위가 갈라진 듯 양쪽으로 벌어져 있습니다.

오른쪽 바위에 마애불이 조각돼 있기에 도로에서는 왼쪽 바위에 가려 불두만 보이고 불신은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두개의 바위가 만들어 낸 공간은 예닐곱 평쯤으로 기도를 하기에 십상입니다. 누가 그리 무슨 지성을 올렸나 법당에는 촛농이 수북합니다. 법당으로 들어가는 입구 왼쪽엔 좌수에 석등을 치켜든 금강장사가 바위부처를 수호하고 있습니다.

▲ 야외법당으로 들어가면 밖에서는 보이지 않던 불신 전체가 보입니다.
ⓒ 임윤수
안동 마애불에 접두어처럼 따라붙는 제비원(燕飛院)에서 '원'(院)은 옛사람들이 묵어가던 일종의 여관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일반 주막과는 격을 달리해 주로 관료나 선비들이 쉬어가던 그런 곳을 원이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 옛날 영남지방에서 한양이나 중부지방엘 가려면 추풍령이나 문경새재 또는 안동을 지나 죽령을 넘어야 했으니 이쯤에도 숙박시설이 있어야 했으며 그 숙박시설이 제비원이였던 듯싶습니다.

굴러다니는 돌에도 사연이 있고 떠다니는 구름에도 이유가 있을 진데 이곳의 절 이름이 연미사며 제비원이라 불렸던 데는 나름대로 사연이 있고 전설이 있을 듯합니다.

그 옛날 제비원에는 조실부모하고 잔심부름을 하던 처녀가 있었으니 그 이름이 '연(燕)'이었다고 합니다. 출중한 미모에 심성까지 고우니 주변의 총각뿐 아니라 지나가던 과객들도 연이를 사모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연이는 이렇듯 외모와 마음만 고울 뿐 아니라 불심까지 깊어 불공을 열심히 드리고 자비를 실천하는 공덕을 쌓았다고 합니다.

연이처럼 가난하지만 심성이 고운 사람이 있는가하면, 부유하나 심술궂고 다른 사람을 도울 줄 모르는 사람도 있으니, 이웃에 사는 김씨 성을 가진 김 부자의 아들이 그랬습니다. 김 부자의 외동아들도 연이를 사모하고 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졸지에 저승엘 가게 되었습니다. 저승에서 염라대왕으로부터 국문을 받던 이 총각은 살아생전 지은 악업이 많아 다음 세상엔 축생인 소로 태어날 것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 뒤쪽으로 돌아가면 삼층석탑이 있습니다. 주변에 있는 바위들과 마치 장기라도 두는듯한 풍경입니다.
ⓒ 임윤수
소로 태어나 고생할 것을 생각하니 상상만 해도 그 형벌이 너무 끔찍해 어떻게든 구제해 달라고 애원하니 저승사자들이 한 가지 방법을 귀띔해 주었습니다. 그 방법은 적덕을 많이 해 선행의 창고가 가득 한 연이에게서 그 공덕을 빌어다 쓰면 다시 환생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총각은 연이의 공덕을 빌어 저승에서 이승으로 다시 환생합니다. 이승으로 돌아온 총각은 개과천선해 연이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빌려 쓴 적덕을 대신해 자신의 재물을 뚝 떼어주고 여생을 착하게 살았습니다. 생각지 않게 부자가 된 연이는 그 돈으로 불당을 지어 중생을 구제하기로 마음먹고 절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 뒤로 돌아 올라가 보면 불신과 불두가 별개로 되어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 임윤수
5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불사를 회향하던 날, 법당 지붕에 마지막 기와를 덮던 와공이 발을 헛디뎌 떨어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지붕에서 떨어진 와공의 몸은 산산조각이 나고, 혼은 제비가 되어 날아갔습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이 절을 제비사 또는 연미사라고 부르니 이 일대를 제비원 또는 연미원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연이는 그의 나이 서른여덟이 되던 해 동짓달 스무사흘 날 죽었습니다. 연이가 죽던 날 하늘에서는 뇌성벽력의 천둥 번개가 치고, 법당 옆에 있던 커다란 바위가 두 쪽으로 갈라지면서 지금의 석불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이 돌부처가 연이의 혼에서 태어난 부처님이라고 믿는다고 합니다. 이 마애불이 그토록 곱상하고 매끈한 것도 미모의 연이와 관련된 전설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 흥부의 제비가 박 씨를 물어다 주었듯 제비원 부처님은 부처님의 자비와 가피를 내려주실 듯합니다.
ⓒ 임윤수
보물 제115호로 지정된 이 마애불은 불신과 불두가 일체를 이루지 않고 불두(佛頭)가 별도로 조각되어 얹혀진 상태입니다. 야외법당이라고 해도 좋을 마애불 앞 공간으로 들어가면 불신을 자세하게 볼 수 있습니다.

불두는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그 윤곽이 분명하지만 불신은 그에 비해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목에 새겨진 삼도는 물론 가사문양양등을 구분하는 데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습니다.

불신의 문양이 또렷하지 않은 걸 비바람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는 적당치 않다고 생각됩니다. 그대로 노출된 불두보다 앞 바위에 가려진 불신이 더 씻기거나 비바람을 더 많이 맞았을 거란 말은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혹시 모르겠습니다. 불두는 비바람을 맞더라도 바로 건조되지만 불신은 응달져 더디 마르기 때문에 풍화의 속도가 달라 그렇게 되었다면 말입니다.

불두와 불신의 석질이 다르기 때문에 풍화속도가 달랐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다고 불신의 문양이 형편없거나 불분명하다는 건 아닙니다. 어깨를 감싸고 흘러내린 옷 주름은 실물을 보는 듯 사실적입니다. 왼손은 가슴높이로 들어 올렸으며 오른손은 아래쪽으로 뻗으니 그 손길이 기도하는 이의 어깨높이에 해당합니다.

마애불 뒤쪽에 있는 석탑으로 가려면 법당 뒤쪽으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자연스레 놓인 바위 사이에 3층 석탑이 세워져 있습니다. 주변의 이끼 낀 돌과 석탑이 마치 그늘에서 장기라도 두는 듯한 노인들을 연상케 합니다.

석등을 뒤로하며 큰길로 나서니 문득 '제비'란 이름에서 박씨 물어다 준 흥부의 제비가 떠오릅니다. 바로 그 흥부의 제비처럼 사바세계 곳곳에 부처님 자비와 가피 물어다 줄 믿음과 구도의 발원지가 이곳 제비원 마애불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듭니다. 구원의 박씨 하나 떨쳐 달라고 합장삼배하며 일상 속으로 종종걸음을 칩니다.
연미사 찾아가는 길
중앙고속도로 → 안동IC → 5번국도 영주방향 3Km → 한티재 → 제비원 주유소
760-330 경상북도 안동시 이천동 708-4번지 (054)852-3413

필자가 쓴 책자 <걸망에 담아온 산사이야기>에 실린 글에 사진을 더한 것입니다
  2006-04-20 18:03
ⓒ 2006 OhmyNews
출처 : 행복이 담긴 마음씨 박씨를 가져다 주는 돌부처님
글쓴이 : 계림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