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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사진]'낯설게 하기'의 즐거움…장 보드리야르

tlsdkssk 2006. 3. 29. 05:14

'낯설게 하기'의 즐거움…장 보드리야르의 사진들

 

'시뮬라시옹'의 철학자 보드리야르가 포착한 일상 속 '초현실'

 

미디어다음 / 고양의 프리랜서 기자 catartiat@hanmail.net&CC=&BCC=" target=new>

 

보드리야르의 사상은 '시뮬라시옹', '소비의 사회', '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 등의 번역서로 국내에 소개됐고, 실체 없는 가상 이미지가 현실을 지배하는 사회를 그린 저서 '시뮬라시옹'(1981)이 영화 '매트릭스'에 영향을 줬음이 알려지면서 일반 대중에게도 알려진 바 있다.

그러나 사상가가 아닌 예술가로서 보드리야르를 소개한 국내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전시 제목인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부터 보드리야르의 유명한 시뮬라크르 이론이 연상되는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가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포착한 풍경과 정물, 인물 사진 70점을 선보인다.

 

 

 바스티유(Bastille), 2000

물 한 컵이 만들어낸 아나모르포즈, 즉 마술적 변형의 세계는 시뮬라크르의 공간과 맥이 닿는다. 구면형 거울과 같은 휜 공간은 피상적 세계의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는 장치로 작용한다.

 

 

   런던(Londres), 1990

장미와 복숭아가 그려진 벽 앞을 붉은 자동차가 지나간다. 마치 자동차에서 한 떨기 장미꽃이 솟아오르고 있는 것 같다. 절묘한 순간을 포착한 사진은 초현실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리브잘트(Rivesaltes), 1998

구멍 뚫린 담벼락을 통해 바라본 또 다른 담벼락의 모습. 언뜻 보기엔 평범한 풍경이지만, 마치 사람의 얼굴처럼 보이기도 하는 재미있는 사진이다.

 

 

 생 바스트(Saint Vaast), 2005

이 사진 역시 사물 속에 숨어 있는 형태를 찾아낸 작품이다. 오래된 나무의 표면에 드러난 네모난 얼굴은 의도적으로 새긴 것이 아니라 관찰자의 시각 속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것이다.

 

 

   베니스(Venice), 1985

파도 그림이 그려진 벽과 폴크스바겐의 꽁무니. 서로 다른 이미지가 충돌하면서 이채로운 풍경을 만들어냈다.

 

 

   생 뵈브(Saint-Beuve), 1999

우두커니 서서 그림자를 내려다보는 남자는 과연 길에 서 있었던 것일까. 마치 중력을 초월해 건물 벽에 직각으로 붙어 아래를 내려다보는 듯하다. 위에서 내려다보고 찍은 구도로 일상의 공간감을 변형시켰다.

 

 

   파리(Paris), 1986

강렬한 색채와 명암 대비, 절묘한 구도가 맞아떨어져 강렬한 인상을 자아낸다.

 

 

 부에노스 아이레스(Buenos Aires), 2001

바삐 길을 재촉하는 사내와 그 뒤를 따르는 그림자. 사내의 모습과 미묘하게 다른 포즈를 취하는 그림자가 마치 살아있는 듯 생경하게 느껴진다.

 

 

   뉴욕(New York), 1992

마천루와 승용차가 즐비한 도심 풍경은 '스펙터클의 사회'라는 표현을 실감나게 해준다.

 

 

   작품과 함께 한 장 보드리야르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을 소개해 달라는 요청에 장 보드리야르는 "모두 다 마음에 드는데…" 하며 미소를 짓다가 이 작품 앞에 섰다. 누군가 앉았던 듯 보이는 의자는 지나간 사람의 흔적과 현재의 빈자리로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여기서 시간은 현실에서의 시간이 아닌, 이미지 안에서의 시간이다.

 

 

 

보드리야르가 1980년대부터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촬영한 사진은 우연히 마주친 일상의 순간을 스냅사진처럼 포착한 것이다. 그의 사진은 평범한 일상과 미묘하게 공존하는 초현실적 풍경을 담아내면서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기'라는 예술의 대전제를 충실히 지켜낸다.

예컨대 거대한 장미꽃이 피어나는 듯 보이는 자동차, 언뜻 사람 얼굴처럼 보이는 구멍 뚫린 담벼락, 바스티유 광장의 모습이 거꾸로 담겨 있는 물 한 컵 등이 바로 그것이다.

사람들은 보드리야르의 사진 속에서 이론과의 연계성을 발견하려 하지만, 정작 작가는 사진을 이론과 연계시키지 않았다. 다만 순수한 시각적 즐거움을 위한 수단으로만 여겼던 것. 사진이 해독해야 할 기호가 될 때 사진의 즐거움도 사라져버린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사진은 침묵한다. 사진의 이미지는 우리에게 아무 이야기도 들려주지 않는다. 현실과 그 이미지 사이에 소통은 불가능하다. 관람자가 사진을 보고 그 이미지에 관해 의문을 가졌을 때 사진이 아무런 답을 주지 않는다면 그 이미지는 순수한 것이다"라는 게 보르리야르의 말이다.

예컨대 독일의 대문호 헤르만 헤세가 마흔의 나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소설가가 아닌 화가로 내적 충만함을 누렸듯이 장 보드리야르 역시 사념 없이 사진을 찍으며 예술가로서 이미지에 탐닉하는 즐거움에 매료된 것이다.

평범한 일상의 기록과 초현실적인 이미지가 공존하는 사진에서 작가가 설파해온 사상의 실마리를 읽어내려 하기보다는 그가 발견한 세계의 이면을 따라가며 각자의 시각으로 사진을 느껴보는 것도 좋은 감상법이다.

출처 : [사진]'낯설게 하기'의 즐거움…장 보드리야르
글쓴이 : susyy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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