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스크랩] 포르노, 섹스, 갈망… 박범신 `은교`보다 더 진한 `소소한 풍경`으로 오다

tlsdkssk 2014. 5. 30. 07:25

 

포르노, 섹스, 갈망… 박범신 '은교'보다 더 진한 '소소한 풍경'으로 오다

 

 

소설가 박범신씨의 새 장편 ‘소소한 풍경’은 장편 ‘소금’ 이후 1년 만에 선보인 작품입니다. 그러나 연애소설로만 국한하면, ‘은교’(2000) 이후 4년 만에 다시 남녀의 사랑 이야기로 돌아왔습니다.

이 소설은 윤리적으로 용납하기 어려운 남녀관계를 다룹니다. 포르노에서나 볼 수 있는 스리섬(threesome)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 명의 여자와 한명의 남자가 서로 질투하지 않고 사이좋게 사랑을 나눕니다. 한 남자가 두 여자를 아내로 두는 아랍이나 전근대 조선의 일부다처 결혼제도 아래서도 세 사람이 한꺼번에 사랑을 나누지는 않습니다.

이 소설은 침대에서, 욕조에서 셋이 사랑을 합니다. 그런데 싸구려 도색잡지도 아니고 어엿한 한국 대표문인이 쓴 순수문학이 이런 소재를 다뤘다면, 그 속엔 어떤 전략이 있다고 봐야 합니다. 실제로 박범신씨는 “최대한 내가 흥분하지 않는 방식으로 소설을 썼다”고 했습니다.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퇴폐적 연애가 아니라 그걸 빌미로 삶의 어떤 모습을 드러내 보이려 한 것입니다. 우선 소설 내용부터 살펴볼까요.

‘소소한 풍경’은 어떤 소설?

ㄱ은 어느 날 낡은 다세대주택 앞에서 물구나무서기를 하는 ㄴ을 발견합니다. 그는 집주인에게 억울하게 내쫓긴 세입자로 자신의 몸속에 남아 있는 힘을 모조리 빼내기 위해서 온종일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있습니다. “죽고 싶으세요? 물구나무서기론 절대 안 죽어요!” 혼자 사는 ㄱ은 ㄴ을 자신의 집에 머무르게 합니다. 커다란 더플백 하나를 짊어지고 들어온 ㄴ은 언제든 곧 떠날 것 같은 모습입니다. 그러다 그들은 서로의 존재가 자신에게 알 수 없는 만족을 준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깊은 관계를 맺습니다. “둘이 사니 더 좋네!”

박범신 장편소설 '소소한 풍경'
박범신 장편소설 '소소한 풍경'
어느 날, 농기구 점에 들른 둘은 삽 세 자루를 사서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날부터 ㄴ은 ㄱ의 집 뒤란에 우물을 파기 시작합니다. 여자는 우물이라고 하고, 남자는 샘이라고 했습니다. 샘을 판다는 것은 ㄴ이 한동안 ㄱ의 집을 떠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물이 완성될 즈음, ㄷ이 그들의 집을 찾아옵니다. ㄴ은 어린 그녀를 처음 보자마자 ㄱ의 집에 들이면 안 될 것이라고 예감합니다. 하지만 ㄱ은 ㄴ의 뜻을 거부합니다. ㄷ은 자신에게 마음을 연 ㄱ의 집에서 스스럼없이 자리를 잡아갑니다. ㄷ은 ㄱ에게 먼저 다가갑니다. 그리고 얼마 후 ㄴ도 ㄷ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합니다. ㄱ와 ㄴ, ㄴ와 ㄷ, ㄱ과 ㄴ, ㄷ은 마치 ‘덩어리지듯’ 서로에게 뒤섞여듭니다. “셋이 사는 것도 참 좋네!” 소설에선 세 사람이 사랑을 나누는 것을 ‘덩어리’라고 표현합니다. 절대 저속한 문장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덩어리’는 이 작품이 말초적 자극을 지향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어휘입니다.

ㄴ의 우물 파기가 완성된 날, ㄱ과 ㄴ, ㄷ은 우물에서 나오는 첫 물을 마시며 밤을 보냅니다. 다음 날 아침, ㄱ은 우물 앞에 앉은 ㄴ을 발견합니다. 그는 우물 안을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습니다. 그의 등으로 햇빛이 산란했고 어느 순간, 흰색 블라우스를 입은 ㄷ이 ㄴ이 사라진 자리에 남아 있었습니다. 소설은 ㄴ이 어떻게 됐다고 구체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ㄴ은 우물 속에 거꾸로 박혀 죽음을 맞습니다.

형사는 ㄱ의 집터 공사 중 발견된 남자의 데스마스크에 관해 추궁합니다. 그 데스마스크는 일반적인 경우인 석고가 아닌 시멘트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우물을 시멘트로 메우고 나서 시신이 부패하면서 시신을 감싼 시멘트의 내면을 따라 데스마스크가 생성된 것이죠. 그런데 다른 데스마스크들이 죽음의 고통으로 표정이 일그러져 있지만 이 데스마스크의 표정은 담담했습니다.

사랑의 가치는 소유에 있지 않고 상대를 이해하는 것에 있다

이 소설을 이해하려면 인생을 보는 박범신의 시각부터 알아야 합니다. 박범신의 연애소설은 허무라는 정조에 맞닿아 있습니다. 젊음은 한시적이라는 자각, 생은 영원하지 않다는 근원적 상실감이 그의 사랑 이야기를 지배해 왔습니다. 전작 ‘은교’에서 그 감정은 노(老)작가가 10대 소녀를 사랑하고 그녀의 젊음을 질투하는 것으로 표현됐습니다. 노인의 질투는 생의 찬란함은 도드라져 보이게 하는 반어적 감정상태입니다. 이번에는 ‘집착의 무의미함’을 화두로 삼았습니다.

 

논산에 살고 있는 소설가 박범신이 7일 새 소설을 들고 서울 인사동을 찾았다. 그는 "사랑이 집착에 빠지면 부자연스럽고 타인을 억압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논산에 살고 있는 소설가 박범신이 7일 새 소설을 들고 서울 인사동을 찾았다. 그는 "사랑이 집착에 빠지면 부자연스럽고 타인을 억압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ㄱ은 대학 내내 사귄 남자와 결혼했지만 1년 만에 이혼하고 고향 ‘소소’로 돌아갔습니다. 이혼을 한 이유와 ㄴ을 사랑하는 이유가 이 소설에서 작가가 하려는 말을 대신해줍니다.

ㄱ의 전남편은 사랑을 소유하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아내와 친구를 만나 식사를 하는데, 아내가 친구에게 깻잎을 찢어주자 돌아와 “왜 내가 아닌 다른 남자에게 그런 짓을 하느냐”며 화를 내는 사람입니다. ㄴ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록그룹에서 활동하던 그는 리드보컬을 맡은 여성에게 호감을 가집니다. 그러자 다른 멤버가 그에게 화를 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이미 함께 잔 사이야. 어디라고 끼어들어.” ㄴ은 이 여성을 소유하려는 게 아니라 호감을 가진 만큼 더 이해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해명합니다. ㄱ이나 ㄴ은 사랑이 배타적 소유대상이 아니라 더 깊이 이해해야 하는 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을 공유한다’는 파격적 주제와 달리 이 소설은 유미주의나 윤리적 타락으로 귀결되지도, 이를 조장하지도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행위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ㄷ이 함께할 수 있도록 방문을 잠그지 않았다’는 식의 설명뿐이죠. 성적(性的) 판타지를 자극하거나 갈망을 해소하는 것은 애초에 작가의 목표가 아닙니다. 작가는 “영원히 소유하면서 사랑할 수 없다면 누군가를 내 것으로 삼기 위해 들이는 모든 집착을 놓아버리는 게 어떨까”라고 말합니다. 그런 생각은 영국 록그룹 비틀스 맴버 조지 해리슨의 노래를 곳곳에 배치한 데서도 드러납니다. 해리슨은 삶을 방랑으로 인식했고 죽은 뒤 힌두교 의식에 따라 갠지스 강에 재로 뿌려졌습니다.

이번 작품에서 작가는 사랑의 가치를 사회적 약자의 생존권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합니다. 당연하고도 논리적인 귀결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독점하기보다 이해하려 한다면 그런 자세가 이웃과 사회에 대한 관심과 배려로 나타나야 한다는 거죠. ‘ㄷ’은 ‘나’와 ‘ㄴ’이 사랑을 나누는 자리에 들어와 “자기들끼리만, 너무해요”라고 소리칩니다.

얼핏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이 외침은 세상을 떠돌다 공장에 취직한 ‘ㄴ’의 입에서 새로운 의미를 획득합니다. 제철소의 안전장치 미비로 동료가 용광로에 빠져 죽는 사고를 목격한 ‘ㄴ’도 “자기들끼리만, 너무해요”라고 말합니다. 회사와 세상을 향해 “너희만 잘사는 세상을 우리와 함께 잘사는 세상으로 고치라”는 요구입니다. 문학평론가 복도훈은 이런 박범신표 연애 이야기를 “박범신의 새로운 사랑 이야기”라고 평했습니다.

영화 ‘글루미 선데이’의 스리섬

‘소소한 풍경’을 읽으며 2차대전 당시 헝가리를 무대로 스리섬 연애를 다룬 영화 ‘글루미 선데이’를 떠올렸습니다. 이 영화가 ‘소소한 풍경’과 다른 점이 있다면 한 여자가 두 남자와 사랑한다는 점이죠. 영화를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서로 사랑하는 세 사람 사이에 헝가리를 침공한 나치 독일의 장교가 끼어듭니다. 그는 여자를 협박해 자신과 동침하지 않으면 그녀의 연인들(유대인입니다)을 가스실로 보내 죽이겠다고 하죠.

그녀는 결국 원치않는 동침을 합니다. 나치 장교는 이후 남자들을 가스실로 보내며 약속을 파기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먼 훗날 이 장교가 헝가리를 방문합니다. 남자는 거기서 목숨을 잃습니다. 그녀의 아들(이 아들은 아버지가 유대인들일 수도 있고 심지어 독일군 장교일 수도 있습니다)이 어머니를 위해 장교를 독살합니다.

 


영화 '글루미 선데이'의 장면
영화 '글루미 선데이'의 장면
이 영화가 말하는 것도 스리섬 찬양은 아닙니다. 좋아하는 사람을 강제로 소유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일 수 없다는 감독의 인생관을 충격적인 스토리로 보여줄 뿐입니다.

‘소소한 풍경’을 현실에 직접 대입해서 읽으면 불편해집니다. 우리의 현실은 윤리라는 행동철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니까요. 그러나 소설은 우리의 인식을 옭아맨 윤리의 틀에서 벗어나 삶의 본원적 가치를 다시 볼 기회를 줍니다. 이 작품을 읽는 동안 사랑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듯이요. 작가 박범신이 하고 싶은 말이 이것입니다.

소소한 풍경

박범신 장편소설|자음과 모음|360쪽|1만3500원


 

출처 : 豊友會
글쓴이 : 시보네/54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