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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와 실

tlsdkssk 2013. 11. 11. 08:44

◑ 허(虛)와 실(實)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두 가지로  존재한다.,

이 글의 의도는 일상 속에서 숨겨져 있고 보이지 않게 존재하는 그 무엇을 찾아내고, 그 실체를 느껴 보는데 있다.

그래서 실체(實體)가 있어서 눈으로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것을 실(實)이라고 하고, 눈에 보이지 않고 만질 수는 없는 것을 허(虛)라고 해 본다.
여기서 말하는 허(虛)는 착시현상에 의한 허깨비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분명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 즉, 영혼의 세계 또는 공(空)의 세계, 그리고 뇌 기억 저편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세계와 보이는 세계, 즉 허(虛)와 실(實)의 세계는 세상에서 공존하고 수시로 교감한다는 것이다.

 

1. 보이는 않는 세계(虛)

 

사람은 시각을 통해 외부환경을 받아들이고 눈에 보이는 것들로 주로 영향을 받지만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은 아주 일부에 불과하고,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것이다.

보이는 겉모습은 피상적이고, 끊임없이 변해가는 과정의 한 순간에 불과하여 고정된 것이 아니며 그것은 마치 물거품이나 허깨비와 같고, 꿈이나 그림자와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 보이지 않는 세계에 주목을 한 몇몇 선지자(先知者)들이 있어 이들을 통해 허(虛)의 세계를 들여다 본다.

 

 - 금 송아지를 만든 이스라엘민족

 

성서에는 선지자 모세가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도움으로 애굽(이집트) 땅에서 구해내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간 후 내려올 기미를 보이지 않자, 불안감을 느낀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 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을 숭배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이를 보신 하나님이 크게 노하시고 모세가 이들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를 애절하게 구하는 장면이 구약 (출애굽기32:1-14)에 나온다.

눈에 보이는 "금 송아지"는 쉽게 믿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좀처럼 믿지 못하고 설사 믿더라도 금방 잊어버리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 고려를 건국한 태조왕건


후삼국시대에 삼국을 통일하고 고려를 건국한 왕건은 전쟁터에서 수많은 적들을 물리쳤고 당시 최고실력자인 궁예와 견훤 등 정적(政敵)들을 차례로 제압하고 나서 한반도를 통일한 운 좋은 사람이다.
그런 태조 왕건이 67세 되던 943년에 병에 걸렸고 이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는 주변의 신하들에게“나는 죽는 일을 집에 돌아가는 일처럼 여기고 있다. 슬퍼할 것 없다.”라고 말하였고 최후의 순간에 신하들이 울음을 터트리자 다시 정신이 든 왕건은 “생명이 덧없음을 모르느냐?”라고 신하를 꾸짖었다고 한다.
그는 '보이는 세계'를 통일했지만, 마지막에는 뭔가 부족하고 표현하기 어려운 허무감을 느꼈던 게 틀림없다.

 

- 거지 철학자와 알렉산더대왕

 

고대그리스 철학자인 소크라테스의 제자 '안티스테네스'는 인간존재의 목적은 쾌락에 있는 게 아니라
'탁월함' 곧 덕의 실현에 있다고 보고, 엄격하고 금욕적인 태도로 살았다고 한다.
그러한 '안티스테네스'의 제자 디오게네스(BC404-323)는 대낮에 등불을 들고 정직한 사람을 찾아다녔다고 전해지는데 그는 스승보다 더 쾌락을 멀리하고 온갖 종류의 평판, 재물이나 안락함을 거부하고 살았다. 그는 금욕적인 자족을 강조하고 향락을 거부하는 견유학파(犬儒學派)의 대표적인 인물이며, 거지(the dog) 철학자로서 생전에 많은 일화를 남겼다.
인간의 행복은 내부에 있다고 믿은 그는 독신으로 살면서 누더기 옷을 걸치고 다니며 날씨가 좋으면 바깥에서 잠을 자곤 했다.

"하늘보다 더 좋은 지붕이 어디 있단 말인가, 풀보다 더 부드러운 베개가 어디 있단 말인가, 꽃과 나무보다 더 좋은 장식품이 어디 있단 말인가." 하면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디오게네스를 방문하러 왔을 때, 디오게네스는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디오게네스가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무슨 계획이 있냐'고 묻자, 그리스를 정복하려 한다고 답했다.
"그리스를 정복하고 난 다음에는 또 무엇을 바라시겠습니까?"

"소아시아 지역을 정복하길 바라겠지." "그 다음은 또 무엇을 가장 바라시겠습니까?"

"아마도 온 세상을 모두 정복하길 바라겠지".
디오게네스가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다시 물었다. "세계를 정복한 다음에는 뭘 할 것인가"라고.
"그 때는 좀 쉬면서 즐기겠다"고 했더니 디오게네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대왕이시여, 지금 쉬면서 즐기지 않고 왜 그렇게 사서 고생을 하려고 하십니까?"

그리고 이번에는 알렉산더가 무엇을 도와주었으면 좋겠느냐고 묻자, 디오게네스가 대답한다.

"햇볕을 가리지 않게 조금만 비켜 주시오." 라고

 

- 어린 왕자

 

앙투안드 생텍쥐페리가 쓴 "어린 왕자"에서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귀중한 비밀 하나를 가르쳐 준다..
"내 비밀은 이런 거야. 매우 간단한 거지. 오로지 마음으로 보아야만 정확하게 볼 수 있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법이야"

 

또 어린 왕자가 말한다. "사막은 아름다와.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디엔가 우물이 숨어 있기 때문이야.
눈으로는 찾을 수 없어, 마음으로 찾아야 해."

 

2. 보이는 세계(實)

 

사람은 눈을 통해 세상을 보는데 만약 사람에게 눈이 없었다면, 인류의 시력이 지금보다 많이 나빴더라 세상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시각으로 보이는 세계에 대한 설명으로 Seri ceo에 나오는 강신주박사의 철학 강의 <인간의 유한성 어떻게 보완되는가?>와 <시각이 남긴 여백> 를 요약해 본다.

 

아일랜드의 철학자이자 신학자이며 주교인 버클리(George Berkeley, 1685-1753)는 신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철학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철학은 "존재하는 것은 지각된 것이다" 라는 명제로 요약되는데 우리가 지각하는 것만이 실체이며, 지각하지 못하는 것의 실체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독창적인 논의로 물질의 존재를 부인하고, 물질적 대상은 다만 지각을 통해서만 존재한다고 하는데, 이 존재를 지각하는 것을 정신이라고 했다.

버클리에게 홀로 존재하는 물질적인 실체는 없는 것이다.

책상 위의 컵을 내가 보고 있을 때는 지각이 되지만, 뒤돌아볼 때는 내가 지각할 수가 없어서 그 동안은 '존재하기를 중지할 것'이라는 반대에 대하여 그는 '대신 신이 항상 모든 것을 지각하고 있다'고 대답한다. 즉 컵이 존재하려면 누군가가 지각하고 있어야 하는데 그가 바로 신이고, 그래서 신의 존재를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착안한 현대철학자들은 다시 타인과 함께 살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두 사람이 마주보고 있을 경우 각자가 앞은 볼 수 있지만, 서로의 뒤를 볼 수는 없다. 이때 신이 존재하여 이를 봐 주지 않는다면 마주보고 있는 타인이 나의 뒤를 봐 주어야 온전한 삶이 된다는 것이다.

강신주박사는 말한다. 사실 우리의 감각경험은 얼마나 협소한가?

사람은 노력해도 세상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고, 알고 있는 것 또한 완벽하지 않다. 그래서 타인을 믿어야 완전해지고 외롭지 않은데, 타인이 바로 앞에 있어도 서로 불신하면 모든 것이 끝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내가 타인을 신뢰하는 순간 나의 협소한 세계는 무한히 확장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시각이 남긴 여백>이라는 강의에서 게오르그 짐멜의 논문 <감각의 사회학>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돈의 철학"을 쓴 게오르그 짐멜(1858-1918)은 20세기 초, 막스베버(Max Weber, 1864~1920)와 같은 일 사회학의 거장이 활약하던 시대에 그는 비주류 사회학자이자 철학자로서 철학계에서 외면을 당했다.

1980년대 후반에야 짐멜의 학문이 재평가 되었는데 그는 "사회란 인간들 사이의 상호작용"이라고 보았고, 그의 사회학은 "인간은 다른 사람과 상호 작용하는 삶의 상황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인식에 기반하였다.

게오르그 짐멜은 <감각의 사회학>에서, 인간은 감각의 존재로서 정치나 경제관계에 있어 시각에 거의 의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면, 조선의 시대의 신하는 왕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는데, 이것이 지배하는 자와 지배받는 자의 상징적인 차이이고 곧 정치행위라는 것이다.

강자는 보는 자이고, 약자는 보여지는 자로서, 보는 자는 우월하고 보여지는 자는 열등하다.

상대가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것은 불쾌한 감정이며 도전이라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시각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세상에서 우리에게 눈이 없다면, 지금의 정치 세계와 경제 세계는 완전히 붕괴한다.

시력이 나빠지면 현대의 패션문화는 자연스럽게 없어질 것이고,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같이 전염병으로 집단적인 실명현상이 생긴다면, 도시는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인류의 문명은 종말을 고하고 인간은 더 이상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 선조들이 '눈이 보배'라고 했는데, 작게 뚫린 두 눈의 역할은 대단하다.

짐멜은 <감각의 사회학>에서 보이는 것만이 우리가 가질 수 있다고 단언한다. 따라서 동산이든 부동산이든 재산이 되려면 우선 보여야 하고, 소리는 cd로 담기고 공기나 물은 용기에 담겨야 재산이 된다는 것이다. 즉 시각으로 인해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유지된다는 것이다.

 

또 우리의 감각 중에 시각, 즉 "보고싶다"는 오감 중에서 가장 약한 감각이고, 다음은 청각, 가장 깊은

감각은 촉각이라고 한다.

"보고싶다(시각) => 듣고 싶다(청각)=> 만지고 싶다(촉각)" 라는 순서로 감각이 깊어진다는 것이다.

오감 중에서 우리의 가장 깊은 감각은 촉각인데, 이 감각이 제일 풍성하고 따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강신주박사는 우리가 피상적인 시각의 세계에만 매몰된다면, 다른 감각의 세계를 망각할 수도 있는 점을 강조하면서 정치, 경제에서 시각에 너무 의존하는 세상은 여백이 너무 많다고 경고한다.

철학자들은 시각이 남긴 이 빈자리를 무엇으로 메울 것인가? 하는 의문을 던지는데, 이 여백과 빈틈이

내가 이 글을 쓰는 의도이기도 하다.

 

3. 허깨비의 세계

 

우리는 눈을 뜨고 있을 때 헛것을 보고 있을 수도 있고, 오히려 눈을 감고 있을 때 실체가 보이기도 한다. 실체를 제대로 보려면 나의 지혜뿐만 아니라 남의 지혜도 필요하고, 지나간 역사에서 교훈을 얻기도 한다.

간혹 믿었던 사람에게 실망을 하게 되고, 기대치 않았던 제 3의 인물로부터 도움을 받기도 한다.
그 사람이 나를 속인 것도 있지만 내가 그 사람의 실체를 잘못 보았거나 허깨비를 보았을 뿐이다.
타인의 허물을 논하기 보다 나의 무지와 운명을 탓하자. 세상의 모든 원인은 내게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 논어에서 군자는 자신에게서 구하고, 소인은 남에게서 구한다.(君子 求諸己 小人 求諸人)고 하지 않았던가.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허깨비의 세계, 술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한다.
술은 인간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 같기도 하고, 신이 내린 선물 같기도 하다.
술은 상처받은 인간을 일시에 치유하기도 하고, 두려움도 없애고 외로움도 없애고 별난 경우에는 영육(靈肉)의 통증까지 없애서 천국의 문턱에 이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종교에서는 인간이 술을 먹고 해롱거리며 신을 모독할까 하여 술을 금지하니까, 신이 일부러 술을 만든 거 같지는 않고 정말 신이 만들었다면 실수로 만들었을 것이다.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고 사람이 좋아지고 마지막에는 술이 술을 부른다.

혹 이빨이 아파 술을 먹지 못하고 옆자리에 있어 보면 가관(可觀)이다.
평소 말이 없던 사람들도 말이 많아지고 진심이 흘러나오고 비밀이 새어 나간다.
좌중의 모든 사람들이 붕 떠서 이상한 대화를 반복하지만, 술을 먹지 않고 정신이 멀쩡한 내가 도리어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눈 세 개 달린 나라에서는 눈 두 개 달린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다.

 

신경정신과의사 이야기로는 '알코올 중독자'들의 공통된 특성은 남들에게 평판이 좋았던 사람, 정말 마음씨 좋은 사람들이라고 한다.
심성이 너무 고운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불편한 마음을 표현할 수 없어서 술을 좋아하게 되고
술을 먹어야 세상이 편해 보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나쁜 술버릇은 사람을 악마로 만들어 개인이나 가정을 파탄으로 몰기도 한다.
젊은 시절 "술 친구는 친구도 아니다"라고 동네어른들이 말씀하시곤 했는데, 술은 사람을 즉시 호인으로 만들지만, 신의를 지키게 하지는 않는다.
술을 같이 마실 때는 더없이 좋은 동료이고 목숨까지 같이 할 수 있다고 생각되지만, 다음 날 술이 깨면 간밤의 모든 언어가 날아가는, 문자 그대로 허깨비의 세계이다.

 

무지개나 신기루같은 것은 우리의 눈에 보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착시현상에 의해 그렇게 보이는 허깨비이며 가까이 다가가면 실체가 없다.
술에 취하여 보이는 세상도 이와 같은 것이다. 착시에서 오는 허깨비의 세상이며 오히려 실의 세계이다.
이것은 여기서 말하는 허의 세계가 아니다.

눈에 보이는 세계와 달리 공(空)의 세계, 허(虛)의 세계는 보이지 않으나 분명히 존재하는 그 무엇이다. 흔적이 없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의식 저편의 세계이고, 손에 만져지지 않는 영혼의 세계이다.

이들은 서로 관계 맺어서 일체(一體)로 존재하기에 실(實)이 있는 곳에 허(虛)가 있고, 허(虛)가 없으면 실(實)도 없는 것이다. 나만의 방식이긴 하지만, 보이지 않는 허(虛)를 중심으로 평소에 의문을 품었던 부분을 살펴보고자 한다.

 

4. 성(性)의 허실(虛實)

 

남녀가 법적으로, 외관상으로 결혼을 했다고 모두 이성(異性)이 있는 것이 아니다.  
40대의 친구들은 '와이프가 식구이지, 어떻게 여자냐?' 고 허드레를 떨기도 한다.
음(陰)이나 양(陽)이 각각 홀로 있으면 홀로 있을수록 그 기운이 왕성해지지만, 원앙이불 속에서 같이 머무르면 양극이 무디어 진다. 인간 관계도 물리적 현상과 서로 닮은꼴이다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원앙금침은 사랑의 상징으로 생각되지만 실은 밤새 같은 이불 속에 머문다면 음양은 방전이 되어 전기적 충돌이 없어지는 법이다.  

졸지에 배우자는 허깨비 되는 것이고, 실(實)과 허(虛)가 교통되지 않고 허깨비가 되는 순간이다.
반면 서양사람은 배우자를 식구(?)가 아닌 여자로  보호하기 위해 엄청 노력하는 것 같다.

미국이나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그들의 호텔에 더블침대는 없고 싱글침대만 놓여 있어 조금 어색하다.
하지만 부부가 각자 다른 침대에서 잠을 자는 서양인들도 알고 보면 멋도 알고, 생각이 많은 민족이다.

 

어떤 스님은 영혼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육체를 낮추어 평가하려는 의도로 '우리가 송장(육신)을 끌고 다닌다'고 하신다.

이성간의 사랑도 알고 보면 이 송장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품성을 사랑하고, 육체를 통해 내비치는 그의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다.

물론 육체의 아름다움을 도외시할 수는 없지만, 내가 아는 남녀의 애정은 육체의 세계보다 허(虛)의 세계이고 영혼의 세계이다.
따라서 우리의 생각과 상상에 따라 이러한 영혼은 얻어지기도 하고 분실되기도 한다.
반대로 독신으로 있다고 주변에 사랑이 없는 게 아니고,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반드시 금욕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은 무늬만 보고, 실체를 판단하면 오류에 빠진다. 여기서 중세의 철학자와 수녀의 숭고한 사랑이야기를 소개한다.

 

프랑스의 스콜라 철학자 "피에르 아벨라르"와 그의 제자 "엘로이즈"의 비극적인 사랑은 1118년 철학자 "피에르 아벨라르"의 명성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로 운명적인 만남을 가지면서 시작된다.
두 사람은 스무 살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사랑에 빠지는데 스승과 제자의 정신적인 교감은 관능적 사랑으로 발전하고 그들의 관계가 발각되었을 때 엘로이즈는 임신한 상태였다. 그러자 증오로 가득 찬 그녀의 삼촌 필베르는 가문의 명예를 이유로 자객을 고용해서 아벨라르의 국부를 잘라내 버리 잔인한 복수를 한다. 이후 남성을 잃은 철학자 아벨라르는 자신의 수치심과 절망을 뒤로 하고 수도원으로 들어가고, 이후 엘로이즈도 아벨라르의 뜻에 따라 다른 수도원의 수녀가 된다.

이들은 나중에 다시 연락이 되어 서신을 주고받는데, 1132년부터 1137년까지 오간 12통의 편지가 남아있다. 다음은 사후에 공개되어 유명해진 편지 글이다.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저를 결혼상대로 희망하여 전 우주를 영구히 지배하도록 해주겠노라고 약속한다고 해도, 그의 황후로 불리기보다 당신의 창녀라고 불리는 쪽이 제게는 훨씬 가치있어요.”

수녀원장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왕의 아내이기보다 오히려 당신의 창녀이기를 바란다"는 것이니,

그냥 '당신을 보고 싶다거나, 목소리를 듣고 싶다거나'가 아니라 가장 깊은 감각인 촉각에 호소하면서 성적불구가 되고 자신에게 무관심해진 전 남편에 대한 뜨거운 애증(愛憎)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불운한 천재 아벨라르는 또한 말년에 카톨릭으로부터 이단으로 몰려 도피생활을 하다가 63세에 사망하고, 시신이 되어서야 비로소 엘로이즈에게 인도되었고 그녀가 수녀원장으로 있는 수도원에 묻히게 된다.
오랫동안 서로 만날 수 없었던 그들의 사랑은 육체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너무나 영적이었고 그래서 더욱 육체적인 사랑이 되었다. 영적으로 성숙하고 예민한 사람들은 또한 육체적으로도 그 만큼 성숙하고 예민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것은 같은 근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허와 실이 일체로서 교감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

신학자나 철학자라고 해서 성스러운 성직자라고 해서 육체적인 욕망에서 더 멀어져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일 수 있다. 세상은 그림자를 보고 실체를 추정하고 상상하는 사고(思考)의 연습도 필요하다.

 

5. 남녀의 허실

 

여자들이 여가시간에 인터넷을 서핑을 하면 주로 옷이나 구두, 명품 같은 것에 시선이 쏠리고, 반면 남자들은 뉴스와 스포츠에 눈이 먼저 가는 것 같다.
나는 옷을 볼 때 디자인보다 컬러가 먼저 눈에 들어오고, 옷의 전체적인 발란스나 맵씨에 관심이 많은데 와이프를 포함하여 다수의 여성들은 그 외에도 옷의 질감이나 메이커에 관심이 더 많은 거 같다.

젊은 시절에 내 주변의 여성들을 단조로운 이미지로 파악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여성의 다양성과 그 깊이와 저력에 놀라곤 한다.

과학적 연구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여성의 뇌는 감정과 관련된 기능이 뛰어나며, 남성의 뇌는 추상적 공간 조작 능력이 뛰어나다고 한다. 이런 차이 때문인지 여성은 남성보다 스포츠활동에 관심이 적고, 몸 동작이 느리거나 운동에 소질이 없어 보인다.
그건 그렇다 치고 역사상 수많은 철학자들 중에 왜 명성있는 여성철학자는 거의 보이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여성들은 보이지 않는 형이상학의 세계보다 눈에 보이는 세계, 명품같은 것에 상대적으로 관심이 더 많아서인가? 하는 의문 말이다.   

여자들의 이런 맹점에 남자들이 우쭐한 미소를 지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 남자들의 문제는 더 심각하다.
 

고대 로마 황제들은 통치의 수단으로 '빵과 서커스(bread and circuses)' 를 정치에 적극 활용했다.
2,000년전 전성기 로마제국의 위정자들은 가난한 자들에게 무상으로 밀을 배급하였고 어떤 사서(史書)에도 사람이 굶어 죽었다는 기록은 없다고 한다. 지금의 북한과 사뭇 비교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배불러 무료한 남자들을 달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쉽지가 않다.
그래서 황제들은 콜로세움 원형경기장에서 간간이 민중들을 모아놓고 검투사(劍鬪士) 경기와 전차경주 를 무료로 보여 주는 것을 황제의 의무로 알았다.
영화 <벤허>나〈글래디에이터〉에 나오는 검투사들은 경기장에서 사람을 직접 죽이고 관중을 흥분시킨다. 로마의 검투사들은 돈을 벌려고 자발적을 참여한 자도 드물게 있었지만, 주로 죄수나 노예출신이거나 전쟁터에서 잡힌 포로였으며, 그들은 싸움을 목적으로 전문양성소에서 양성되었다.
이들은 콜로세움에 모인 엄청난 관중들의 함성 속에서 칼에 찔려 죽곤 했는데, 관중들은 잔인한 경기에서 희열과 재미를 느꼈음에 틀림이 없다. 로마의 남자들은 관전(觀戰)이라는 실의 세계를 통해 타인의 고통과 죽음을 간접 체험하면서 허(虛)의 세계를 상상하고 쾌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러나 당사자인 검투사(글래디에이터) 본인들은 매일 사형수가 같은 공포에 떨었을 것이고, 구경거리 노예가 아닌 인간다운 삶을 간절히 원했을 것이다.

실존인물이었던 스파르타쿠스는 이탈리아 카푸아의 노예 검투사 양성소에 소속된 검투사였는데, BC 73년 74명의 동료 노예와 함께 양성소를 탈출하였고 베수비오 화산에서 탈주노예와 빈민을 규합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한때 7만 명에 달했던 반란군은 마지막 결전에서 대부분 전사하고 포로가 된 6천여 명은 모두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스럽게 서서히 죽었다고 한다.

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가 바로 "스파르타쿠스"인데, 이들 반군들은 전투 중에 포로로 잡은 정규군끼리 "검투사 시합"을 하도록 강요하고 구경을 했다고 하니 그들이 한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간다. 

 

6. 일상(日常)의 허실

 

최근 다시 거친 격투기 경기가 유행하는 것을 보면, '빵과 서커스'는 현대 사회 속에서도 아직 유효한 거 같고, 여기에 이성(異性)의 문제를 더하면 인간세계의 대략이 보인다.

경찰서에 가 보면 대부분의 범죄는 돈과 명예, 술이나 여자와 관련되어 있다.
즉, 우리의 일상생활이 곧 돈과 명예, 유희나 이성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돈은 실(實)에 속하나, 허(虛)에 속하는 생각이 이를 지켜 내지 못하면 하루아침에 허공으로 날아간다.
이 경우 실(實)을 지키는 것은 허(虛)의 역할이라고 볼 수 있다.
반대로 아이디어로 돈을 버는 사람도 있는데, 허가 실을 창조하는 순간이다.
사람은 동산이나 부동산, 주식 등 '유형의 자산'을 소유하고, 가족과 친구 등 인적관계를 통해서 서로  교류하는 '무형의 자산'도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물적 자산처럼 인적 자산도 많이 소유할수록 좋을 것 같기나 하나, 영(靈)의 세계도 현실적 한계가 있어서 도를 지나치면 감당하기 어려운 바 적절한 범위 내에서 깊이 있는 사귐이 오가야 우리의 영혼을 충실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재산에서는 아무래도 실의 세계가 좋아 보인다. 그러나 허(虛)의 세계가 외롭다면, 실이 존재하는 의미도 없어지고 실을 지켜 내지도 못할 것이다.
입이 삐딱한 사람은 사귈 수 있으나 돈이 많아도 영혼이 삐딱한 사람과는 같이 지낼 수 없는 것이다.
 
돈이나 여자문제가 아니라면, 사람은 명예 때문에 심하게 싸우기도 한다.

'품위'나 '쪽', '체면' 이라는 말이 사람들의 입에 자주 회자(膾炙)되는 것을 보면 명예는 사람의 행동을 제어하고 그래서 실의 세계를 제약한다.

어떤 이에게 명예는 휴지조각처럼 아무 것도 아니지만, 어떤 이에게 명예는 돈보다 중요하고 목숨보다 중요하다. 사람은 독특한 감정의 동물이어서 당신이 가진 것을 모두 주어도 그 사람의 명예를 손상시키면 도움을 받았던 사람이 전혀 고맙게 생각하지 않는다.  

개는 먹이를 아무 곳에나 던져 주어도 잘 받아 먹지만, 사람은 무뢰하게 던지는 손길에 대해서는 화를 내거나 물어뜯는다.

사람의 명예심은 까다롭다. 인격적인 모욕 뿐만 아니라 비교나 차별에서도 명예심은 쉽게 손상된다.

자식도 잘못 키우면 원수가 된다. 키워 준 부모를 등지는 자녀의 경우도 이에 해당되지 않을까? 

 

그 사람의 명예를 지켜 줄 자신이 없으면 처음부터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말라.

나는 명예 때문에 모든 것을 걸고 승부하는 사람도 보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보았다.

연예인이나 정치인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허(虛)는 원래 잘 멸하지 않는 법인데, 명예는 일순간에 사라지기도 해서 실의 세계에 가깝다.
브랜드가 물건의 기대가치라고 한다면, 명예는 사람의 기대가치이며 또한 이미 검증된 가치이기도 하다.

보통 돈을 번 사람은 다음 단계로 명예를 얻고 싶은 것이고, 돈으로 명예를 사고자 하기도 한다.
반대로 명예나 인기로 돈을 벌 수도 있을 것 같다. 명예는 눈에 보일 듯 말듯 하지만, 허보다 실의 세계에 속하는 거 같다.

 

7. 책의 허실  

 

- 독서

 

일전에 책 속에 길(진실)이 있느냐 없느냐를 두고서 몇몇 분들이 논하는 것을 보았다.
책은 기본적으로 허의 세계인데 그 속에 실이 들어있느냐 하는 것이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인데도 대화나 생각에서 거의 활용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1년 내내 책 한 권 읽지 않아도 생각의 깊이가 있고 논리가 있는 사람이 있다.

일반적으로 책은 현장의 경험보다 현실감이 떨어지고, 자극의 강도도 감각 중에 가장 약하다는 시각보 더 미미해서 잘 잊혀진다.

예를 들어 만일 자전거타기나 수영을 책으로 배우려면 엄청 어려울 것이다.

골프나 테니스 교본이 있지만, 책을 통해 배운 내용을 실전에 활용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경험하지 않은 사실을 책을 통하여 배운다는 것은 바로 이런 차이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다독을 해도 책의 내용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내는 도구(기본형)가 없으면 무용지물이 되지만, 비록 책은 읽지 않아도 일상에서 보고 접하는 수많은 정보에 대하여 왜? 라는 의문을 가지고 스스로 해석하는 습관, 즉 기본 메커니즘이 정립되어 있는 사람은 책에서 얻는 지혜를 대신 얻고 있는 거 같다.

 

나의 경우 초등학교 때 읽은 보물섬은 지금도 기억이 나는데, 중학교 때 읽은 수많은 위인전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책의 문제인지? 나의 문제인지? 허와 실의 교감을 이루어 내지 못하는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릴 적 가슴이 뛰었던 보물섬처럼 내가 읽는 모든 책이 기억에 잘 남아있다면 나는 훨씬 나은 사람이 되었을 텐데, 그러나 요즘은 두 달 전에 읽은 책을 다시 봐도 세부 내용은 새삼스럽기까지 하다.

책을 많이 읽어도 나뭇가지 사이로 술술 빠져나가는 봄바람처럼 된다면 아무런 지혜도 감흥도 남아있지 않게 된다. 그러나 흥미있고 효율적으로 읽는 책은 읽을 때마다 가슴 벅차서 성장의 나이테가 되고, 허가 실로 교통되는 순간을 경험한다.

몇몇 소수의 사람만이 책의 내용을 자기 것으로, 실(實)의 세계로 쉽게 만들어 내는 놀라운 능력이 있는 거 같다.

 

- 글쓰기


흔히 실(實)이 없고 유희가 있는 사람을 실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허실의 구분은 그렇게 명확하지 않지만, 글 쓰는 나 자신도 실없는 사람에 해당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주변의 생각을 정리하는 것에는 글쓰기가 좋은 도구라고는 생각을 한다.
또 글이라는 것은 스스로를 정리할 수 있는 장점은 있지만, 성장이나 변신을 위해서 다시 딱딱한 껍질을 벗어야 할 때 시간과 고통이 동반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글쓰기도 독서와 마찬가지로 생각의 유희로 끝나기 쉬운 함정이 있다.
글이 화려하고 강인한 것과 작자가 실제로 그런 것은 별개의 문제이고, 글은 글이고 현실은 현실일 수도 있다. 글쓰기는 기본적으로 허의 세계인데, 허가 허(虛)의 세계에만 그치는 순간이다.
원래 글로 배운 지식이 머리에만 머물러 있으면 곧 잊혀지지만, 체득이 되고 실과 교통이 되면 기억에 또렷이 남는다. 독서나 글쓰기에서 허의 세계를 실의 세계로 이끌어 내는 습관, 이것은 바둑의 기본형(정석)을 알아야 승급을 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 아닌가 싶다.

 

1년에 한 권씩 15년 동안 장대한 로마인이야기를 쓴 일본인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이 책 말고도 일생동안 많은 작품들을 남기고 있다.

그녀의 책 머리에는 보통 그녀의 얼굴이 나오는데, 최근의 그녀 사진을 보았을 때 나는 적잖이 놀랐다.
50대 중반의 완숙했던 여인이 20년 후의 사진에는 늙은 노파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세월의 흐름은 어찌할 수 없었던 글쓰기의 귀재, 평생 글 속에 묻혀 허(虛)의 세계에 있었으니 정작 실의 세계에 남긴 족적(足跡)은 얼마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역사를 너무나 짝사랑했던 그녀인데 현실 속에서는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사랑을 하였을까 궁금하다.

 

중세 이탈리아의 베네치아가 상업의 도시이고 실(實)의 도시라면, 단테와 마키아벨리,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다빈치등 수많은 르네상스의 인물을 배출한 피렌체는 허(虛)의 도시이다.

피렌체공화국의 현실정치에서 추방되고 고독한 현실 속에서 혼자만의 상상력을 불태우며 불후의 명작들을 남긴 피렌체 사람 둘을 소개한다.

우선 비운의 천재 단테(1265~1321)는 피렌체 공화국에서 추방되고 나서 일생동안 망명지를 전전하며 대한 "신곡"을 완성했다.

그는 교황파 중에서도 피렌체공화국의 자립정책을 내세우는 백당(白黨)에 속했으나 교황과 강하게 결탁한 흑당(黑黨)이 정변으로 정권을 잡자 조국에서 추방되었고, 죽을 때까지 조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불멸의 고전이 된 신곡(神曲)은 단테가 피렌체에서 추방당해 방랑지에서 19년에 걸쳐 완성한 신학적 서사시로서 중세의 모든 학문을 결집하고 그리스의 호메로스와 로마의 베르길리우스가 이루어 온 장편 대서사시의 전통을 계승한 작품이다.

그는 현실세계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작품을 통해 사후세계, 허의 세계를 그렸는데, 그의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자서전적인 이야기와 당대 이탈리아의 정치상황을 기독교 중심의 중세 세계관으로 묘사하였다.

특히 "지옥편" 에서는 인간성의 종말과 그들의 벌에 대하여 다루면서 현실 세계에서 자신을 궁지로 몰 모략한 사람들을 악마의 모습으로 묘사하고 조롱하기도 하는데 현실의 울분을 글로서 마음껏 해소한 것처럼 보인다.

 

단테가 사망한지 148년 만에 같은 피렌체에서 태어났던 마키아벨리(1469~1527)는 스페인의 공격에 의해 피렌체 공화정이 무너지고 메디치家의 군주정이 복원되자 그는 피렌체 정부의 공직에서 추방되었다.

이후 마키아벨리는 메디치 정부의 공직에 참여를 희망했으나 반대파의 외면으로 실현되지 않았다.

그는 결국 피렌체 교외 산트 안드레아의 작은 농장에서 칩거생활을 하면서 사후에야 유명해진 "군주론"과 "정략론"을 집필하게 된다.

그는 당시 분열된 이탈리아의 현실을 안타까워 하였고 강력한 군주의 출현으로 옛 제국의 영광과 이탈리아의 통일을 소망하면서 이 글을 집필하였고, 이 책을 당대의 정치 유력자들에게 보내 내심 공직을 얻고자 하였으나 그의 바램은 끝내 실현되지 않았다.

그가 죽고 한참이 지난 18세기 이후에야 비로소 그의 작품들은 주목을 받았는데, 이 "군주론"을 집필하던 당시의 모습이 시오노 나나미가 쓴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에 나온다.

로마교황청의 피렌체 대사인 그의 친구 프란체스코 베트리에게 보낸 편지 내용 중 일부이다.

 

『 낮 시간에는 동네 상점주인들이나 인부들과 카드놀이로 시끄럽게 시간을 보내다가 밤이면 집으로 돌아가 더러워진 평상복을 벗고 예절을 갖추기 위해 몸을 정제하고 관복으로 갈아입고 서재로 들어간다.
상상 속에서 옛 사람의 궁중으로 입궐하여 그들과 대화를 하면서 경건한 마음으로 매일 4시간 동안 전혀 지루함 없이 글을 쓴다.

"모든 고뇌를 잊고, 가난도 두렵지 않게 생각하고, 죽음에 대한 공포도 없이" 』 

현실세계와 동떨어진 허(虛)의 세계에 완전 몰입을 한 것이다.

 

8. 기억의 허실

 

초등학교 때 배운 줄넘기나 태권도 품세는 그 동안 전혀 한 적이 없어도 기억에 남아 있는데, 중,고등학교 때 배운 수학공식들은 거의 암흑 속에 묻혀 버렸다. 나눗셈을 오랜 세월 계산기에만 의지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손으로 하려니까 잊어져서 낭패스러운 적이 있었다.
수학이나 과학 공식은 아무리 달달 외워도 6개월이 지나면 대개 잊어 버린다.
그러나 어린아이가 한 번 걷기 시작하면 그 다음부터는 잊지 않고 계속 잘 걷는다.
아이가 한 번 말하기 시작하면 그 다음부터는 잊지 않고 계속 말을 잘 한다.
말하고 걷는 것이 쉬운 거 같지만, 수학 공식보다 어려운 육체의 복잡한 메카니즘에 의하여 가능하다.
말이 느리거나 걷지 못하는 아이를 둔 부모들은 동감할 것이다.

사람의 기억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 거 같다.
머리로 금방 불러올 수 있는 일반적인 기억인데 지난 주에 외운 수학이나 과학공식이 이에 해당한다.

또 다른 하나는 육체의 기억으로 수십 년 전에 마지막으로 타 본 자전거나 수영에 대한 기억이다.

오랜 공백으로 다시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있지만, 이런 기억은 잘 잊혀지지 않는다.   
나의 어머니는 어린 시절 물가에서 물놀이를 하면서 성장했다고 하시는데, 성인이 된 후 한 번도
물가에 가본 적이 없어도 65세가 넘어 다시 수영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25미터 트랙을 수십 번 왕복하셨다.
이런 종류의 기억은 머리로서는 미리 장담할 수가 없고 실제로 해 봐야 알지만 대부분은 몸이 잘 기억하고 있다. 한 번 배운 수영이나 자전거타기가 수십 년이 지나도 우리의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아주 신기한 일이다. 여기는 허(虛)의 세계에 속하는 기억이라고 분류하고 싶다.

 

언어와 노래는 수학 공식과 자전거 타기의 중간쯤에 있는 거 같은 데, 수십 년간 사용하지 않았던 언어도 다른 일상의 기억과는 달리 세월이 지나도 완전히 잊혀지지 않고 머리가 아니라 혀가 기억하고 있다.

젊은 시절 일본에서 우리 동네로 시집을 왔던 일본인 할머니는 연세가 70세이 넘어도 일본식발음이 사라지지 않았고,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터키병사가 아직도 아리랑을 노래하는 것을 보면 경이롭다.
뇌의 기억(實)과 비교하여 정체한 불분명한 이것을 몸의 세포기억, 허(虛)의 기억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러한 세포기억(또는 운동기억)은 우리의 뇌 이외에 몸의 세포 어딘가에 존재하지 않나 한다.

 

의학적으로 대뇌는 기억과 판단, 몸의 움직임을 관장하고, 소뇌는 주로 운동기능과 평형감각을 조절하여 아무 생각없이 피아노를 치고 자전거를 탈 수 있게 한다.
이것이 소뇌(cerebellum)의 작용이긴 하지만 소뇌의 확실한 기능은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상태다. 모든 동물은 의식적으로 작동시킬 수 있는 근육(수의근)을 사용할 때 그 명령이 소뇌를 통과하게 되지만, 실제로 소뇌의 기능이 완전 상실되었을 경우에도 근육이 완전 마비되는 것은 아니고 근육을 잘 조절할 수 없게 되어 세밀한 운동만 어려워질 뿐이라고 한다.
쉽게 말하면 우리의 머리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몸 세포가 말하기와 자전거 타기와 피아노치는 것을 어느 정도 기억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9. 여행의 허실

 

좀 껍질 같은 여행이 있다. 몇 년전 포상휴가로 여행사를 통해 동유럽을 단체로 여행 다녀온 적이 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나라로 가서 역사적인 건물과 유명관광지를  여기저기 방문하여 사진 많이 찍고 돌아왔는데 한 달 정도 지나고 나니까 쇼핑가게를 들락거린 거 이외에 내가 뭘 봤는지, 뭘 했는지 별다른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공짜로 잘 다녀와서 딴소리해서 좀 미안한 마음이 있지만, 스스로 집을 나서서 먹을 것과 머물 곳을 현지 조달하면서 몸으로 고생하는 게 여행인데 패키지 상품으로 가는 여행은 고생길을 미리 막아서 재미가 덜하다는 의미이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돈으로 충만한 단체여행은 진정한 여행의 맛을 줄인다.
분명 눈으로 본 것은 실의 세계이지만 별다른 지식도 감흥도 남아있지 않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들이 진정 얼마나 남아 있는가?

또 시각은 가장 낮은 수준의 감각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반면 중국의 고전을 읽거나 로마의 역사를 공부하다가 사건이 발생한 해당 지역을 직접 찾아간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오만가지 생각과 상상이 뇌리를 스칠 갈 것이다. 실의 세계에 허의 세계가 결합된다면, 또 같이 여행하는 사람과 맘이 통하고 현지 사람과 직접 대화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7년 전에 강원도 화천 산천어 축제를 다녀온 적이 있다.
찬바람이 매서운 강 에서 얼음구멍을 내고 기운이 넘치는 산천어를 루어 낚시로 끌어올리는 손 맛을 보고 밤에는 민박 집에서 숙박을 했는데, 겨울밤 내내 장작불을 피워 놓고 여행 온 사람들과 인생을 이야기를 한 경험은 잊혀지지 않는다.
거기에는 멋진 경관이나 역사가 없었지만, 쉽게 잊혀질 수 없는 촉각과 짙은 사람의 냄새가 있었다.
여행에서도 시각적인 경관보다도 오감으로 느낀 허의 세계가 또렷한 기억으로 남았던 것이다.
무리로 다니면서 쇼핑하고 껍질을 보는 것보다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그 곳 어부에게서 고기 잡는 이야기를 들어보거나, 집으로 초대받아 같이 식사를 하다면 여행다운 여행이 되는 것이다.

세계 각지를 돌면서 부지런히 사진 찍어 블로그에 올린다고 그 사람의 추억이 되고, 스펙이 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건성건성 보았던 관광지는 시간이 지나면 나뭇가지 사이로 빠져나간 봄바람처럼 되지만, 오감으로 느낀 허(虛)의 여행, 추억이나 감흥은 오래오래 기억되고 간간이 우리의 기분을 흐믓하게 해줄 수 있다.  

 

10. 사후세계의 허실

 

사람이 육체만 살아 있고 영혼이 죽어있으면 식물인간이 된다. 병실에서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환자를 접하면 안타깝고 좀 오싹해지는 느낌이 있다.
반대로 육체는 죽어 없어졌으나 영혼만 살아 있으면, 이 또한 귀신이 되어 섬뜩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사람의 육체와 영혼, 즉 실과 허가 모두 살아 있어야 온전한 것이다.
 

사후의 세계나 사후의 영혼이 있는지 없는지는 어려운 문제이다.

어쩌면 인간의 지식을 저 만치 넘어선 믿음의 문제이다.
사후 영혼이 있다면, 육신은 땅에 남기고 영혼만 몸을 빠져나가는데 과연 영혼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희랍인들은 영혼의 무게란 한낱 거위의 깃털 무게에 불과하다고들 말했으나 인류의 역사상 그것을 속 시원하게 밝힌 사람은 없으나 도전한 사람은 늘 있었다.

 

이 영혼에 대해서 미국의 매사추세츠에 사는 맥드갈 이라는 의학박사가 재미난 실험을 하였다.
그는 미리 환자의 허가를 얻어 가지고, 임종 때의 환자의 몸무게의 변화를 기록해 보았는데 그 결과 죽는 순간에 환자의 몸무게가 20그램 쯤 줄어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즉, 그만한 무게가 환자의 임종 순간에 몸 밖으로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또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 중심으로 뉴욕서 발족한 심령연구협회(American Society for Psychical Research; ASPR)가 인간의식과 영혼의 문제를 과학적으로 연구했는데 그 결과에도 ‘영혼의 무게는 21g’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설사 사후세계가 있어 유체이탈로 우리의 영혼이 빠져나갈 수 있다고 해도 육체가 없는 저승의 삶은 이승의 삶과 비교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우리는 육체로 인해 기쁨과 고통, 희로애락(喜怒哀樂)을 경험하는데, 오감(五感)를 느끼는 육체가 없어져 버리고 영혼만 남은 세계는 비록 보고 들을 수는 있는지는 몰라도 우리의 육체가 누렸던 모든 기쁨과 쾌락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사후세계에 대한 다른 나라, 다른 시대의 사람들 이야기도 좀 들어보자.

 

고대인들 가운데 이집트와 중국 사람들은 영혼이 이중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이해했다.

이집트 사람들은 '카'(숨)는 죽은 뒤에도 살아남아 육체 곁에 남아 있지만, 영인 '바'는 죽은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간다고 믿었다.

중국 사람들은 죽음과 동시에 사라지는 등급이 낮고 감각적인 영혼인 백(魄)과 죽은 뒤에도 살아 남아 조상숭배의 대상이 되는 이성적 원리인 혼(魂)을 구분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또 고대 그리스철학자 에피쿠로스(BC 342~BC 271)는 육체가 죽으면 영혼도 따라서 사멸한다고 믿었다.

'에피쿠로스철학'의 기초를 이루는 원자론(原子論)에 의하면 참된 실재(實在)는 원자(아토마)와 공허(케논) 두 개 뿐으로서, 원자는 궁극적 실체이고 공허(공간)는 원자가 운동하는 장소이다.

원자는 부정(不定)한 방향으로 방황운동을 하는데, 이것에 의해 원자 상호간에 충돌이 일어나서 이 세계가 생성(生成)된다. 인간이나 신(神)들이나 모두 원자의 결합물에 지나지 않으며, 또한 인식(認識)이란 감각적 지각에 지나지 않고, 죽음이란 인체를 구성하는 원자가 흩어지는 것이며, 죽음과 동시에 모든 인식(자기)도 소멸한다. 신들도 인간과 동질의 존재이며 인간에게 무관심하다.

인생의 목적은 쾌락의 추구에 있는데, 그것은 단순히 육체적이고 감각적인 쾌락이 아니라 어떠한 욕망도 없는 상태가 최상의 쾌락으로서, 고통이 없는 상태 ataraxia(마음의 평정)라고 하는 세련된 쾌락이었다. <두산대백과사전 참조>

그들은 이를 위해 은둔생활과 인간적인 우정을 강조했는데, 인간의 모든 인식은 감각적 지각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영혼과 육체를 모두 원자의 생성과 소멸로 본 것이다.
 

아까 소개한 1,300년대초 단테는『신곡(神曲)』에서 사후세계를 그렸고, 그는 책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 있는 사람으로서 BC1세기에 이미 죽은 로마의 대시인 베르길리우스와 함께 지옥(地獄)과 연옥을 방문하여 온갖 종류의 인간들의 죄와 벌을 목격하고, 또 젊은 시절 짝사랑했던 베아트리체의 안내를 받아 천국을 여행한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연옥(煉獄)이란 영적 구원을 받을 만한 여망이 있는 망령들이 천국에 가기 전에 정죄(淨罪)와 수양차 머무르는 곳이다.

그는 신곡에서 세계사 전체를 종교철학의 시각으로 재정리하고 천국과 지옥을 묘사했는데, 틀림없이 그는 사후세계와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하느님의 존재를 믿었을 것이다.

 

여러 분은 사후세계를 믿는지?  전지 전능한 유일신의 존재를 믿는지?

아니면 2,200년 전 아테네 철학자들처럼 육체가 죽으면 영혼도 따라서 죽는다고 확신하는지?
사후세계와 신을 믿는다고 해도 문제가 간단치 않다.

전지 전능한 유일신의 존재를 믿는다고 해도 각 종교가 생각하고 있는 신의 모습은 조금씩 다르다.

같은 종교 아래에서도 세상의 종파는 무수히 많아서 여차하면 이단이 된다.

세상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은 듯 어울려 태연히 살고 있는 곳이다.

 

11. 테레사 수녀의 초월

 

실(實)의 세계는 물리적 한계가 있지만, 허(虛)의 세계는 그 한계가 거의 없기도 하다.
앞서 본 연기론은 불교의 가르침이자 이론이지만 현실에서 이를 가장 잘 실천하신 사람을 찾아보면 카톨릭교회의 신앙심 높은 수녀 마더 테레사가 아닌가 싶다.
살아 계실 때 테레사 수녀가 남긴 아래의 말을 보면, 그녀는 단 한 사람을 참으로 소중히 여겼다.

 

한 번에 한 사람
난 결코 대중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는다.
난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난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껴안을 수 있다.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껴안을 수 있다.
단지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씩만..
따라서 당신도 시작하고 나도 시작하는 것이다.
난 한 사람을 붙잡는다.
만일 내가 그 사람을 붙잡지 않았다면
난 4만 2천 명을 붙잡지 못했을 것이다.
당신에게도 마찬가지다..
 
세상에는 빵 한 조각 때문에 죽어가는 사람
세상에는 빵 한 조각 때문에 죽어가는 사람도 많지만,
작은 사랑도 받지 못해서 죽어가는 사람은 더 많다.   -마더  테레사

 

테레사 수녀는 1910년 8월 26일 유고슬라비아의 스코페에서 출생하였고, 18세에 아일랜드 로레토 수녀원에서 영어를 배우고 수녀가 된 뒤, 인도로 건너가 수도생활을 시작했다. 힌두교와 이슬람교가 대부분인 인도에서 카톨릭의 수녀로서 평생을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더불어 먹고 지냈다.

세상을 향한 헌신적인 사랑을 끊임없이 베풀다가 1997년 인도 캘커타에서 별세하였다.

그녀는 한 사람씩 손을 잡아서 4만 2,000명을 자기 몸처럼 사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비록 불교의 연기론을 알지 못했으나, 실의 한계를 단순한 방법으로 극복하고 제약이 없는 허의 세계로 다가가신 분이 아닌가 싶다.

 

김수환 추기경은 그의  잠언집에서 그녀의 위대성을 아래와 같이 추모했다.
"테레사 수녀는 참으로 세상을 밝히는 빛이었습니다.
그녀는 돈도 없고 귀족도 아니었고 박사도 아니었고 스스로 쓴 것으로는 단 한 권의 책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녀의 별세를 온 인류가 애도하고 신문마다 '사랑의 별 지다! '가난한 자들의 어머니' '인류의 어머니 가시다!' 라고 칭송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인도는 국장으로 장례를 치뤘습니다.
우리가 아는 한 지금까지 그 누구의 죽음도 이렇게 전 인류의 애도와 추모를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12. 니체와 자력(磁力)

 

유태인의 속담으로 기억하는데 아래와 같은 이야기가 있다.
사람이 죽어 하늘나라로 올라가면 심판을 받는데 하늘의 심판관이 두 가지를 물어 본다.

"너는 생전에 얼마나 많이 웃었고, 얼마나 많이 남을 웃겼느냐"

이 두 가지로만 천당과 지옥을 가른다고 한다.

즉 자신과 남들에게 얼마나 많은 기쁨을 선사하였지가 잣대가 됩니다.
사람(人)은 맞붙어 있고 서로 기대어 있어서 내가 남을 기쁘게 하면, 나 자신도 덩달아 기뻐지는 거 같다. 네가 행복해야 내가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하고 싶다면, 잠에서 깨었을 때
오늘 하루 동안 적어도 한 사람에게, 적어도 하나의 기쁨을
선사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생각하라.
그 기쁨이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상관없다.
실현되도록 노력하며 하루를 보내라.

 

그는 또 말한다.
마음이 불쾌해지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이 이룬 것, 자신이 창조한 것이 사람들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끼지 때문이다.
늘 기분 좋은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요령은
타인을 돕거나 누군가의 힘이 되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것으로 존재의 의미를 실감하고 순수한 기쁨을 누리게 된다. 』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가끔 이런 경험이 있다.
마음에 내키지 않은 사람이 있어서 겉으로만 호감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나의 속내를 숨기고 친하고자 노력해도 좀처럼 사이가 가까워지지 않다가, 어는 날인가 내가 먼저 상대에 대한 인간적인 호감을 느끼는 순간 그도 마음을 활짝 열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나의 허가 상대방인 실의 마음을 여는 순간이고,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 되는 감격의 순간이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 일시적인 오해는 있어도 진정한 오해는 없는 것이다.
오해가 아니라 내가 진정으로 그를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고, 곧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다.
세상은 무엇인가로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다.

 

철학자 니체나 마더 테레사 수녀가 지난 번에 살펴본 불교의 "연기의 법칙"을 공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철학와 종교에서, 불교와 기독교에서 세상의 성자들은 무섭도록 어떤 한 점을 향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것은 단련되고 수행된 자들만이 느끼는 비밀로 스스로 철(鐵)의 성분이 되어 자력(磁力)을 향해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서는 것과 같다.
허와 실의 관계는 자력과 철의 관계와 같다.
자력은 보이지 않으나 분명 존재하고, 철은 눈에 보이게 존재하나 보이지 않는 자력의 지배를 받는다.
자석 앞에 늘어선 쇳가루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
이들은 서로 관련되어 있어 보이지 않는 긴장관계와 연결고리가 존재한다.
우주는 우연이 아니라 질서 속에서 움직인다. 이 질서나 법칙에는 착오나 실수는 없어 보인다.
신이 잠시 실수하여 중력의 법칙이 없어지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세상을 사는 우리는 눈에 보이는 허깨비에 현혹되지 않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잘 보아야 한다.
늘어선 쇳가루의 모습으로 세상에 숨은 자력을 읽어 내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통찰력이 아닌가 싶다.
그런 통찰력은 마더 테레사의 삶에서 큰 기쁨을 발견하고, 니체의 말에서 그의 의도를 눈치챌 수 있다.  

 

13. 진정한 그리스도의 딸

 

테레사 수녀의 사랑이 그녀의 죽음과 함께 봄꽃 지듯이 소멸했는가?
그 사랑이 아직 인류의 머리와 가슴에 살아 있다면 보이지 않는 세계, 이성 너머의 세계, 의식 저편의 세계를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사후세계나 유일신의 존재는 별개로 하더라도, 보이지 않는 세계라고 해서 계속 눈을 감고 살 수 없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테레사 수녀야 말로 진정한 그리스도의 딸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음미하면, 나는 여기서 몇 가지 영감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이웃을 사랑하기 전에 네 몸을 우선 사랑하는 것이 먼저이다. 거지나 죄인이 남을 사랑하기는 곤란한 것이다.

둘째 내세를 사랑하기 전에 현실(몸)를 사랑하라는 말이다. 현재를 포기하고 미래를 얻을 수는 없는 것이다.

셋째는 이웃과 내가 별개의 독립체가 아님으로, 이웃들과의 상호관계 속에서 행복을 찾으라는 것이다.

여기 맛있는 밥 한 그릇이 있다면 나 혼자가 한 그릇을 배불리 먹는 것보다, 상대방이 화해할 수 없는 적(敵)이 아니라면 좀 모자라더라도 둘이서 나누어 먹는 것이 행복의 부가가치를 높인다는 것이다.

사실 세상에는 영원한 적도 없거니와 우리의 증오심도 알고 보면 상대방을 통해 내비친 나의 혐오스런 내면일 수도 있다.

인간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나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나누는 기쁨의 의미를 통감하고 있을 것이다.

 

테레사 수녀의 삶을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입시켜 보면, 빈틈 없이 딱 맞아 떨어진다.

아니, 불교의 연기론도 영락없이 이런 맥락이 아닐까 생각한다.

먼저 나를 사랑하지 않고 현실(몸)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이웃을 사랑하고 내세를 사랑할 수는 없는 것이다.

허와 실은 똑같은 질량을 가지고 있고 어느 하나를 포기하면서 나머지 하나를 구할 수는 없는 것이다.  

 

14. 허와 실의 후기

 

내가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 모습이나 종교 이야기를 쓰면서 그 내용이 형이상학이나 철학에서 이미 충분히 논의되고 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평소 아무 쓸모없어 보였던 학문이 바로 형이상학이나 철학이었는데 뒤늦게나마 그 쓸모를 발견했으니 나름 기쁘기도 하다.   
나 역시 오랫동안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만 쏠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소홀히 했음이다.

형이상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존재의 근본원리를 다루는 학문으로 그것은 경험과 관찰로는 알 수 없고 감각세계의 배후에 있는, 순수한 사유를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는 세계이며 이는 곧 인간의 영혼과 신이 존재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형이상학의 역사는 논란의 역사이기도 한데 소크라테스 시절에는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서 으뜸되는 원인들을 탐구하는 학문으로서 소피아(지혜) 또는 제1철학이라고 불렸고, 그것은 보다 고귀한 존재자를 다루는 신학이기도 했다.  

형이상학은 소크라테스 이하 서양철학의 핵심문제였고, 동양에서는 이보다 더 오래 된 유학의 경전인
주역(주나라의 역)에서 심도있게 다루었으며, 이미 살펴본 봐와 같이 형이상학은 불교에서도 중요한 문제였다.
 

1889년 독일출생으로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전공한 철학자 하이데거는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형이상학은 모든 학문의 기초학문으로서 추앙을 받던 시대도 있었으나, 회의와 비판의 시대에서는 학문으로서 지위마저 의심을 받았고, 기술과 과학의 시대에 들어서는 형이상학은 잘못된 언어놀이의 산물로 간주되어 한 때는 해결되어야할 문제가 아니라 해소되어야 할 허구의 물음으로 내몰리기도 했다.
현실을 '넘어선 것'은 어떠한 것도 받아들일 수 없는 철두철미하게 현실적인 인간들에게 경험은 '넘어선' 것은 아무 것도 인정하지 못하는 과학만능주의의 인식태도에 의해, 확인되고 통제될 수 있는 구체적인 존재자를 넘어서는 어떠한 것에도 관심 갖기를 꺼려하는 실용적, 경제적 생활방식에 의해 형이상학은 한시 바삐 '넘어서야 할' 극복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달라진 시대 상황에서 철학자 하이데거는 단적으로 이렇게 선언한다.
"형이상학은 강단철학의 한 분과도 아니요, 임의적인 착상의 한 영역도 아니다. 형이상학은 (인간) 현존재 자체이다."

 

형이상학은 철학과 종교에서 많은 사람들에 의해 논의되었는데 철학에서는 인간과 우주(cosmos)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종교에서는 신의 존재를 입증하고 구원(자기해탈)을 얻는 방법론이었을 것이고, 유학(儒學)의 경전인 주역에서는 수신(修身)과 치국(治國)의 수단으로서 우주의 근원과 인간본성에 관한 이치를 형이상학적으로 연구했을 것이다.

 

15. 추신(追伸): 형이상학 해설  

 

철학과 종교에서 형이상학은 가장 중요하면서 논쟁이 많은 분야이고, 또한 철학 중에서도 "신"과 관련된 부분, 유일신의 존재를 믿느냐 마느냐 하는 것보다 더 철학적인 것은 없을 거 같다.
인류역사상 가장 방대한 자료를 남긴 종교에 대해서, 아니 나의 종교생활에 대해서 다음 호를 구상중이다.

이 글에서 언급한 많은 부분이 형이상학과 관련되어 있는데 저명한 학자들이 정리한 개념어를 사전에서 인용하고 마칠까 한다.

철학적 지식이 부족한 나로서는 이번 글에서 많은 인용을 했고 아래와 같이 남의 지혜를 빌린다.

 

1> 메타피직스(Metaphysics)

 

형이상학(形而上學)으로 번역되는 영어 낱말 "메타피직스(Metaphysics)"는 그리스어의 메타(meta: 뒤)와 피지카(physika: 자연학)의 결합으로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유래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에 따르면, 형이상학은 존재의 근본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의 근본을 연구하는 부문을 "제1철학"이라 하고 동식물 등을 연구하는 부문을 "자연학"이라 했다.

그가 죽은 후 유고(遺稿)를 정리·편집함에 있어 제1철학에 관한 것이 "자연학" 뒤에 놓여 그 때부터 메타피지카(metaphysika: 형이상학)라는 말이 쓰이게 되었다.
형이상학에 대한 동서양의 견해는 차이가 있다. 대표적인 차이로는 서양의 경우, 인간은 형이상학적 진리들을 직접적인 경험으로 알 수 없다는 견해가 많은 반면, 동양의 경우 형이상학적 진리들을 직접적인 경험으로 알 수 있다는 견해가 많다. <위키백과 용어사전>

 

2> 형이상학(形而上學)의 유래와 개념

이 점은 형이상학이라는 한자 명칭이 생겨난 유래에서도 확인된다. 유학의 경전인 『주역』에는 형이상자(形而上子)를 도(導)라 하고 형이하자(形而下자)를 기(器)라고 한다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서 형이상학이라는 이름이 나왔다. 또 송(宋)나라의 주희(朱熹)는 이러한 '형이상'을 '이(理)' 또는 '성(性)'이라 하고 '형이하'는 '기(氣)'라고 해석하여 성리학의 중요한 개념으로 발전시켰다.
형이상자란 형태가 없고 불변하는 요소이며, 형이하자는 형태가 있고 가변적인 요소를 뜻하므로 메타피지카의 아주 적절한 번역어인 셈이다. <남경태 '개념어사전'>
 

3> 형이상학의 계보

형이상학은 세상 만물의 근원을 찾았던 초기 그리스 철학의 맥을 전통으로 있고 있다. 눈에 보이는 세계는 참된 것이 아니다.

피지카의 세계, 감각의 세계 배후에는 경험과 관찰로는 알 수 없고 순수한 사유를 통해 이해할 수 있는 메타피지카의 세계, 진리의 세계가 있다. 이 곳이 바로 인간의 영혼, 선과 행복, 신이 존재하는 영역이다.
초기 형이상학자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비록 인격신은 아니지만 철학 체계 내에 신의 관념을 포함시켰다. 플라톤은 이데아의 세계를 거의 신의 영역으로 간주했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만물을 움직이되 그 자체는 움직이지 않는 부동의 원동자를 제시했다.

이런 철학적 배경에서 그리스도의 신이 등장했다.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아퀴나스 등 중세의 철학자
들은 모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이용해 그리스도교 신학을 정리하고 신을 논증하고자 했다. 근대에 들어 신학의 권위가 실추되는 상황에서도 형이상학은 전혀 힘을 잃지 않았다.
데카르트에서 헤겔에 이르기 까지 대륙에서 전개되는 합리론의 전통은 기본적으로 형이상학을 완성해 가는 과정이다.  <남경태 '개념어 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