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사회주의~신자유주의

tlsdkssk 2011. 10. 29. 07:45

 

자본주의의 시장원리를 반대하고 생산수단을 공유화함으로써 사회주의 내지 공산주의 사회의 건설을 목적으로 하는 학설 및 정치운동.

영국의 사회주의자 앤서니 크로스런드가 사회주의는 "사회주의자가 사회기구 속에서 구현하려고 하는 일련의 가치 또는 열망"이라고 말했듯이 사회주의의 뜻은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는 어렵다. 근대 사회주의 이념의 싹은 플라톤의 〈국가 Republic〉,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Utopia〉와 18세기 계몽주의시대의 풍부한 유토피아 문학으로 거슬러올라갈 수 있지만, 실제로 근대 사회주의는 산업혁명이 야기한 사회·경제 관계와 전통적인 질서의 붕괴에 반대했던 다양한 작가들의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들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야기한 부정·불평등·피해 및 자유방임적 시장경제 체제에 대해 비판의 화살을 쏘았다. 당시의 탐욕스런 개인주의를 비판하고 그들은 형제적 결속감으로 결합된 새로운 생산자들의 공동체를 꿈꾸었다. 그들은 미래에는 대중이 자본가로부터 생산수단과 정부를 빼앗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19~20세기에 사회주의자로 자칭했던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같은 생각을 공통으로 가지고 있었지만 사회주의의 특정한 이념에 대해서는 서로 의견을 달리했다. 생산수단의 완전한 국유화만이 그들의 목표를 달성시켜 줄 것이라고 주장한 사회주의자도 있고, 주요 산업의 선택적 국유화와 상속권자의 사유재산권 통제를 제안한 사회주의자도 있다. 또 다른 사회주의자들은 강력한 중앙집권국가의 지배와 계획경제를 주장한 반면 그밖의 사회주의자는 사회주의적 입안자가 시장경제를 주도하는 '시장 사회주의'를 주장하기도 했다.

사회주의자들이 제시한 좋은 사회로 나아가는 최선의 방법 역시 다양하다. 몇몇 사회주의자는 정부의 지도를 요구하지만 다른 사회주의자는 공공기관, 준(準)공공 위탁기관, 지방자치기관, 생산자의 자치공동체 등의 정책결정기구를 통해 가능한 한 분산·분권화를 주장한다. 노동자의 지배를 주장하는 사회주의자가 있는가 하면 정부의 계획기구에 의존하는 사회주의자도 있다. 국가수입이 보다 평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모든 사회주의자가 공통되지만 수입의 절대적 평등을 바라는 사회주의자도 있고 직업에 따른 차등지불을 통해 모든 사람에게 적절한 수입을 보장하는 것에만 목표를 두는 사회주의자도 있다.

"각자가 자신의 필요에 따라"는 사회주의자들이 자주 부르짖는 구호이다. 그러나 많은 사회주의자는 각자가 사회에 대한 공헌도에 따라 자신의 몫을 받는 것이 사실상의 사회유지라고 보며, 사회는 먼저 모든 시민에게 최소한의 의·식·주를 보장해야 하고 그들을 교육·건강·교통·오락 등의 기본 서비스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주의자는 또 모든 시민의 정치적 권리와 신분차이를 평등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신분의 차이를 완전히 없애야 하는지, 사회주의 사회에서 정책결정의 불평등이 유지되도록 내버려둘 것인지에 대해서는 서로 이견을 가지고 있다. 사회주의라는 말이 사용되고 악용된 사례는 무수히 많다. 일찍이 1845년에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독일인들이 사용하는 사회주의라는 말이 "모호하고 막연하며 정의할 수 없는 용어"라고 토로했다. 엥겔스 시대 이래 사회주의는 이 용어를 사용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누구나 가져다 쓸 수 있는 재산과 같은 것이었다. 심지어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독일 내의 어떠한 단체도 불법화했던 1870년대 후반 독일의 총리 비스마르크조차도 몇 년 뒤에 "국가는 우리의 제국(帝國)을 위해 사회주의를 도입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파시스트와 전체주의적 독재자 등 현대의 궤변적 보수주의자들도 종종 자신들이 사회주의 건설에 종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사회주의 이념의 기원 브리태니커

 

근대적인 의미에서 사회주의 용어는 1830년경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이 용어는 프랑스에서는 푸리에와 생시몽주의자의 저작, 영국에서는 로버트 오언의 저작에 적용되었다.

생 시몽과 푸리에

앙리 드 생 시몽 백작(1760~1825)은 풍부하지만 비조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괴짜 천재였다. 그의 사회주의 저작은 사회질서와 교권적 위계질서의 붕괴에서 비롯된 당시의 불건전하고 제멋대로인 개인주의적 사상에 관한 생각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는 각 시대마다 그 시대를 구원할 수 있는 싹을 가지고 있으며 이 싹은 높아지는 과학과 기술 수준 및 이미 새로운 산업질서를 건설하기 시작한 산업가와 기술자들 속에서 자라고 있다고 주장했다. 과학적·기술적 지식이 산업주의에 합류함에 따라 전문가의 지배가 시작되었다. 생 시몽은 인간이 선천적으로 똑같은 능력을 부여받지 않았기 때문에 새로운 사회가 평등주의적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새로운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재능에 어울리는 사회적 지위에 오를 수 있는 평등한 기회를 보장받음으로써 잠재능력을 최대한 이용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공공무질서를 근절함으로써 새로운 사회는 강제적 제도로서의 국가를 사실상 제거할 수 있다. 미래의 사회는 거대한 작업장처럼 운영될 것이며 이 속에서 사람에 대한 지배는 사물의 행정에 의해 대체될 것이다.

생 시몽의 추종자들은 생 시몽의 학설을 보다 정확하게 사회주의화하는 데 힘썼다. 그들은 사유재산권이 새로운 산업체제와 양립할 수 없다고 보았고 권력과 재산권의 세습적 양도는 합리적인 사회질서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생시몽주의자들이 생시몽 교회를 세우려는 다소 기묘한 시도를 했다고 해서 그들이 부르주아-자본가들의 재산권이 더이상 신성불가침일 수 없다고 주장한 최초의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프랑수아 마리 샤를 푸리에(1772~1837)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 고독한 사상가로 거의 정신이상자였다. 그는 대부분의 생애를 영업사원으로 보내면서 경험한 경쟁세계와 낭비적 상업에 대한 혐오감을 통해서 반(反)자본주의적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지나칠 정도로 풍부한 상상력을 가졌던 덕분에 그는 다가올 재생된 세계는 사회적 변형뿐 아니라 자연적 변혁과 심지어 우주의 변혁에 의해 특징지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양은 레모네이드로 변할 것이며 야생동물은 인류에게 봉사하는 반(反)사자와 반(反)호랑이로 바뀔 것이라고 했다.

지나치게 세심하고 망상적이었던 푸리에는 자신의 공동체 모델로서, 좋은 미래사회의 발아세포인 '팔랑스테르'(phalanstère)를 계획하기 시작했다. 이 공동체 안에서 인간은 더이상 마음에 맞지 않은 일을 강제로 하지 않아도 되며 자신의 기질과 기호에 맞는 일을 할 수 있다. 아침에는 양배추를 재배하고 저녁에는 오페라를 부를 수 있다. 푸리에는 인간의 자발성은 불필요한 규정 밖에서 이루어진다는 반(反)율법주의적 견해를 가졌다. 생 시몽이 전문가의 지배를 예언했던 데 반해 푸리에는 사랑과 열정이 조화되어 있고 강제 없는 질서 속에서 인간이 서로 결합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오언주의

웨일스의 로버트 오언(1771~1858)은 보다 진지한 견해를 피력했다. 처음에 그는 스코틀랜드에서 직물업을 경영하면서 모범적인 고용주이자 교육개혁가 및 공장개혁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동료 자본가들에게 절망을 느끼고 신생 노동조합운동을 추진했다. 자신에게 부(富)를 얻게 해준 산업주의의 해악을 날카롭게 의식하면서, 경쟁이 없어지고 교육의 나쁜 결과를 합리적인 계몽에 의해 상쇄시킨다면 새로운 생산력은 인류의 이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산업에 대한 공동협동통제와 '통일과 협동 마을'의 창설을 주장했는데 이 마을에서 주민은 수확고를 증가시키고 더불어 그들의 육체와 정신을 향상시킬 수 있다. 오언식의 공동체는 인디애나 뉴하모니를 비롯한 미국의 여러 곳에 설립되었으나 모두 실패했다. 협동에 대한 그의 시도와 '위대한 노동조합' 속에서의 노동조합운동 역시 실패로 밝혀졌다. 그러나 그는 영국의 사회주의 전통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경쟁체제에 대한 비난, 협동과 교육에 대한 강조, '불건전한 환경이 일으킨 어리석은 결과를 없애면 인간은 자신의 지위를 향상시킬 수 있다'는 낙관적 메시지는 사회주의 운동이 지속되는 데 이바지했다.

그밖의 초기 사회주의자

1840년대에는 많은 사회주의 학설이 등장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프랑스의 루이 오귀스트 블랑키는 급진적 사회주의(그는 이것을 공산주의라 불렀음)를 발전시켰는데 급진적 사회주의는 '본질적으로 불안정한 체제인 자본주의는 곧 협동결사체에 의해 대체될 것'이라는 믿음과 인민적 민주주의에 근거하고 있다. 그는 이론화를 서둘렀고 자발성과 혁명적 행동의 미덕에 대해 강한 믿음을 가졌으나 이론적인 공헌보다는 수많은 반란을 기도한 것으로 더 유명하다.

에티엔 카베는 자신의 영향력있는 유토피아 저서 〈이카리아 여행 Voyage en Icarie〉(1840)에서 토머스 모어와 푸리에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노동자 조직 L'Organisation du travail〉(1839)으로 가장 유명한 루이 블랑은 이 책에서 정부가 융통해준 자본으로 국유 작업장을 설치할 것을 주장했다. 이 작업장들은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으며, 노동자들은 그들의 경영자를 선출할 수 있다. 그가 1848년 혁명 이후 파리에 세운 국유 작업장은 부활하는 중간계급에 의해 곧 폐쇄되었으나 그가 '노동조직'을 계획하고 '노동권' 인정을 주장한 것은 근대 복지국가를 예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1809~65)은 무정부주의 전통의 창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특히 그는 사유재산과 사유재산을 근간으로 하는 제도를 비판했는데 상호관계·평등·정의로 이루어진 인간관계가 강탈·착취·탐욕으로 대체될 것이라는 주장은 사회주의자들의 상상력을 강렬히 자극했다. 또 생산자 공동체에 대한 그의 반(反)국가통제주의적·연방적 시각은 사회주의 전통 내에서 집권적·국가통제주의적 시각과 균형을 맞추는 대안을 제공했다.

19세기 초반 영국에서는 많은 작가들이 출현하여 자본주의의 불평등을 공격했고, 저명한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의 사상을 급진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임금노동을 비난했다.조금 뒤에 일어난 프레더릭 데니슨 모리스와 찰스 킹즐리가 이끄는 그리스도교 사회주의 운동은 경제적 급진주의와 정치적 보수주의의 결합을 시도했다. 1830, 1840년대의 급진적 차티스트 운동 에서는 반(反)자본주의 이념이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이 운동은 특정 사회주의 집단의 운동이기보다는 노동계급의 정치운동이었다(→ 색인 : 차티스트 운동).

 

 

Richard Sennet은 사회학자입니다. 계급과 가족, 정신사 등에 대해 연구를 했고, 1977년 The Fall of Public Man을 발표한 이후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고 하는군요. 제가 이 사람을 알게된 건, 몇몇 친구들이 이 사람 책 [살과 돌(Flesh and Stone)]을 번역하여 출간하였기 때문입니다. 친구들에게 책한권 받은 후,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 아직도 안 읽고 있는 책이기도 하죠. 도시사회학 쪽에서 많이 언급되는 Sennet의 책을 한권 봐야지 하던차에 신자유주의라는 흥미로운 주제에 대해 얇은 책 한권을 썼더군요. 냉큼 집어들고 읽었습니다. 사회학자라 내용이 꽤나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몇몇 개인들의 이야기를 회상과 면담 형식으로 풀어썼기에 그리 어렵지 않게 읽었습니다. 번역이 다소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좀 있지만...

 

국가경쟁력, 유연화, 세계화 등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서 개인의 삶이 어떻게 영향을 받고 있는지를 다룬 책입니다. 이 분야에 관심을 갖고 계시다면 한번 읽어보시는 것도 좋겠군요.


 

 

80년대 이후 자본주의는 점점 유연화되고 있다. 기술발전이 가져온 노동 & 생활양식의 변화, 즉 재원거리통신, 재택근무, 여가시간의 증대 등을 보면 신자유주의, 신경제 등으로 불리는 이 새로운 자본주의는 사람들에게 보다 많은 자유를 약속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리차드 세넷(Richard Sennet)은 유연한 자본주의는 바로 납득하기 어려울만큼 정교한 그물로 사람들의 삶을 옥죄어오는 ‘새로운 통제체제’이며 특히 인간성을 파괴한다는 점에서 큰 문제점을 가진 체제라고 주장한다.


인간성의 파괴란 무엇일까? 세넷은 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즉각적인 이해관계에만 혈안이 되어 내면의 영속적 가치를 희생하거나, 온통 단기 목표에만 치중하는 조급증 경제에서 (특히 개인 삶의) 장기적 목표는 실종되어 버리거나, 끊임없이 분열되고 재조정되는 명 짧은 조직 속에서 상호 신뢰나 헌신과 같은 가치가 무시되는 모습이 바로 인간성의 파괴이다.


유연한 자본주의 속에서 삶의 목표와 자기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는 개인들의 모습을 세넷은 다양한 주인공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리고 그들의 삶의 궤적을 추적함으로써 보여준다. 중소 컨설팅회사의 사장으로 5%내에 드는 고소득자지만 직업과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채 불안해하는 리코, 실제로 빵을 굽는 기술은 전혀 알지 못한 채 컴퓨터의 아이콘을 클릭하는 것 만으로 빵을 만들어내는 그래서 앞세대의 제빵사들에 비해 직업 소명의식도 자신에 대한 자부심도 갖지 못한 보스턴의 제빵사들, 50세의 나이에 뉴욕의 광고회사에 도전했다가 상호 신뢰없이 무미건조한 광고팀 속에서 어울리지 못하고 결국 다시 빠(bar) 주인으로 복귀한 로즈, 이들은 모두 유연한 자본주의라는 물결에 휩쓸려 방향타를 잃고 헤매는 현대인들의 표상이다.


현재의 유연한 자본주의는 나, 그리고 내 인생의 가치는 무엇인가? 라는 개인의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해주지 않는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치열한 경쟁 속으로 사람들을 몰고가 이들이 발밑만을 쳐다보며 매일의 삶을 살아내도록 강요할 뿐이다. 개인들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미래 속에서 불안에 떤다. 세넷의 표현대로, “과거 불확실성은 역사적 재앙에 의해 일어났지만, 현대의 불확실성은 격렬한 자본주의의 일상성 안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유연한 자본주의)가 강제하는 인간성의 파괴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세넷의 처방전은 사람들 사이의 상호 신뢰를 회복함으로써 스스로의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다. “스스로를 필요하다고 느끼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필요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집단의 가치를 도그마처럼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의견 불일치와 상호 이해를 통해 사람들이 서로 공감하고 결속하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무관심이 만연하고 서로 간에 책임감을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집단이 아닌, 개인이 그 속에서 스스로의 존귀함과 삶의 목표를 다져갈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 냄으로써 우리는 유연한 자본주의 속에서 인간성을 보호할 수 있다.


아쉽게도 이 책에서 세넷은 보다 구체적인 전략은 알려주지 않는다. 세계화, 국가경쟁력이라는 화려하고 거창한 구호와 함께 착착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 속에서 인간적 공동체라는 파열음을 만들어내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 그런 공동체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지는 책에 나와 있지 않다. 다만 개인의 필요성, 삶의 의미에 대해 해답을 제시해주지 않는 신자유주의는 필연적으로 그 정통성을 의심받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견해만을 피력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