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고 바람 불고
어젠 소요산 찍고 다시 경원선에 올라 고대산이 있는 신탄리까지 갔었다.
소요산도 그렇고 고대산도 그렇고 비오고 바람부는 날 등반을 하는 일은 미련한 짓일 것 같아
산 언저리만 돌았다.
한 때는 눈부신 흰 빛으로 꽃 폭탄을 이루고 이윽고 난분분히 꽃잎을 떨구며
꽃눈을 이루었을 벚나무엔 버찌가 낙과를 이루고 있었다.
소요산 버찌 열매는 얼마나 큰지 큰 놈은 불루베리나 앵두만 하였다.
당도도 제법 높아 따먹을만 한데도 따가는 이 없으니 바닥엔 염소똥 같은 검은 버찌들이 즐비하다.
함께 갔던 친구가 다시 신탄리행 기차를 타자고 하여 경원선에 올랐다.
경원선이 달리는 주변 풍광은 싱그러운 녹음 일색이다.
짙푸른 산, 싱싱한 벼들의 행렬, 기차를 따라 함께 달리는 냇물....
달리는 길에 쥐다래도 보았다. 푸른 숲에서 유일한 형광의 백색으로
의사화를 피우고 있는 쥐다래. 문득 초우 선생님이 떠올랐다.
한 때 나더러 쥐다래 같다고 하신 적이 있었다.
소요산엔 비가 왔는데 북으로 갈수록 빗줄기는 보이지 않았다.
드디어 신탄리.
우리는 함께 올레(?)길 부터 걸었다.
작은 교회도 보이고 축사도 보이고 폐가가 된 집도 보이는 동네길을 구불구불 헤매며 다니는 것이다.
마침 절정을 이룬 밤꽃 향이 어찌나 강한지 코를 찌르며 일시 현기증을 일으켰다.
동네 집 담장엔 곧 떨어질 듯 주렁주렁한 앵두들이 뺄간 열매 끝마다 수정 구슬을 달고 있었다.
앵두도 몇 알 따서 우물우물 먹었다.
전에도 와보았던 하천은 물이 불어 격류를 이루며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격류보다 세찬 바람!
바람이 어찌나 센지 언젠가 부산 태종대에서 맞아본 그 바람 같았다.
다시 약한 빗발이 뿌리기 시작했다.
비와 바람과 산과 들과 내...
풍성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