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한자락

그 여자, 희수

tlsdkssk 2011. 6. 4. 09:25

그 여자가 오늘 아침 또 내 가슴을 때렸다.

그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그녀가 자신의 첫 수필집(세번째 남자)을 보내온 때문이었다.

같은 수필지로 등단한 것도 아니어서 그때까지 나는 그녀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제목만 보아서는 야릇한 상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그녀의 책을 펼쳐 든 순간

나는 그녀가 범상치 않다는 것을 이내 알아차렸다.

나는 글 몇 편 읽어보고 나를 사로잡지 않는 책은  더 이상 읽지 않는다.

보내준 성의에 대한 보답으로 인내력을 가지고 읽어도 본 적이 있지만

불행히도 나의 첫 느낌이 빗나간 적은 거의 없었다.

마음에 없는 말을 잘 하지 못하는 나는 물론 감사의 인사도 거의 전하지 않는다.

감사는 커녕 그런 책들은 내게 난처한 고민만을 안겨주는 때문이다.

성의를 생각하면 버릴 수도 없고, 책장에 두자니 의미가 없는 것 같고.... 

내가 여태 두번째 창작집을 내지 못하는 이유의 절반은 나같이 까칠한 독자가 필경 또 있으리란

염려에서다. <장미와 미꾸라지>를 상재해놓고 나는 얼마나 부끄러움에 떨어야 했던가.

덕담을 보내준 많은(?) 독자들의 말에도 내 부끄러움은 가시지 않았다.

나의 가장 첫번째 독자는 바로 나인데, 나는 나를 만족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그녀의 책을 놓지 않고 빠르게 읽어나갔던 것 같다.

나는 나를 감동시키는 사람에겐 감사의 마음을 전하지 않고는 답답해서 못 견딘다.

망설임없이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책을 보내주어 고맙다고, 참 좋은 수필을 쓰시는 것 같다고....

나 같으면 음성을 반 옥타브 올리며 감사를 표했을 텐데 

그녀의 대답은 의외로 덤덤했고 좀 퉁명하게 들리기까지 했다.

대답도 단답형이라 책에서 느꼈던 감흥이 이내 사라질 지경이었지만,

나는 이미 또 하나의 유사한 작가를 경험한 터라 어쩌면 그녀의 수줍은 성격 탓일 수도 있을 거라고

이해했다. 오래 전, 창작수필 동인이며 선배 수필가인 정영숙의 수필을 읽고 작품이 하도 좋아

그녀에게 전화한 적이 있었다. 한데 그녀는 매우(?) 퉁명스레 받았다.  말도 별로 없었다.

나는 그녀가 내게 무슨 유감이라도 있는가보다 싶을 지경이었다.

훗날 그녀에게 그 말을 전했더니 그녀는 미안해 어쩔 줄을 모르며 간혹 그런 오해를 받는다고 했다.

자긴 그냥 너무 부끄러워 말을 못했다고 하면서.... 

 

소설과 동화와 수필 사이를 방황하며 나는 한 동안 수필을 외면하며 살아왔다.

일고싶지 않은 책들을 열심히 보내오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더욱 수필을 웃읍게 알기도 했다.

하지만 간혹 나를 놀라게 하고 가슴 뛰게 하는 수필 작가들을 만나면 수필이 웃으운 게 아니라

좋은 글을 못 쓰는 작가들의 문제라는 점을 새삼 깨우치며 깊은 반성을 하게 된다.

 

그 여자, 김희수의 <냉동사유, 냉동 사유>라는 글을 인터넷에서 우연히 읽게 되었다.

복사 금지를 하여 내 플래닛에 옮기지는 못했지만, 내 독서 습관과 글 쓰기의 자세를

뿌리채 흔들어대는 글이었다. 

수필에게 용서를 빈다. 수필의 문제가 아니라 내 역량의 문제였다.

김희수, 그녀는 내가 게으름을 피우고 그릇된 오만에 젖어 있는 사이

끊임없이  연마하며 이렇게 감동을 주는 수필을 보여주고 있다. 

그녀는 오늘 나의 좋은 스승이 되었다.

그녀에게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