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티
시인 윤동주는 일찌기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노래했다.
'서시'를 읽을 때마다 그건 윤동주가 이상주의에 불타던 젊은 시절에 쓴 시라서 그랬을 거라는 생각을
나는 떨칠 수가 없었다.
장담컨데 인간은 그 누구고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 수가 없다.
설혹 누군가가 그렇게 살아왔다고 장담한다면
그건 그 사람의 착각일 것이고, 자랑을 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그는 자랑과 교만이라는 건널 수 없는 다리를 건넌 셈이라,
그로 인해 그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있는 인간이 되고마는 것이다.
미인의 얼굴에 잡티 하나가 있다 해서 그녀를 미인이 아니라고 간주하면 안 될 것이듯
한 인간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이 살아온 전반적 인생을 바라보아야지
그가 저지른 한시적 실수나 과오를 두고 그 사람 전체를 평가를 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초우 선생님 생전에 저 유명한 H선생에 대한 얘기를 전해 들은 적이 있었다.
그분은 정신적으로 하류 인생을 사는 사람이 아니고는
대한 민국 사람이면 모를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하고 그 유명세만큼 존경 받는 어른이었다.
한데 그 분이 한 때 자기 조카를 성 추행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조카 되는 여성은 그 사실을 사회에 공개하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모양이다.(이 부분은 정확지 않다)
그 얘기를 전해들으며 나는 초우 선생님께 이렇게 대답했다.
"좀 놀라운 일긴 하네요. 하지만 저는 그 사건 하나로 그분의 업적이
망가지는 건 원하지 않아요. 당사자는 힘들겠지만 그런 건 자기 선에서 묻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초우 선생 역시 나와 같은 의견이었는데, 그건 초우 선생이 남자였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나는 초우 선생님에게 들은 그 얘기를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않았다.
내가 직접 본 사건도 아니거니와 내 입질 하나로 만에 하나라도
H 선생에게 누를 기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오늘의 발설은 H라는 이니셜을 사용한데다 그 분의 경력을 발설하지 않았으니
괜찮다고 본다.
내가 30 중후반 무렵의 어느 날, 밤 시간에 김포에 있는 모 본당 사제관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또래의 여성 교우들과 함께 우리는 그날 그 본당에서 행해지고 있는
성령세미나의 성가 봉사를 할 예정이었다.
우리 일행 네댓은 사제관에서 신부님이 나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후 신부님이 모습을 들어 내었다.
나는 그 신부님의 눈길이 흥분으로 반짝 빛나는 걸 보았다.
신부님이 물었다.
"B동 성당 자매님들은 모두 이렇게 미인들만 있나요?"
이런 질문이야 덕담 차원에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신부님의 눈길은 결코 담담하지 않았다.
그 날 사제관을 찾은 자매들은 우연히도 거의가 미인 측에 속하는 여성들이었고
나이도 40 전후라 여성으로서 한참 농 익은 아름다움을 풍길 나이이기도 했다.
게다가 사제관의 조명이 백열등이라 우리들은 조명발을 받아 더 한층 분위기 있게 보였을 것이다.
그 신부님의 언행을 놓고 트집을 잡자면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일행 중엔 그런 자매도 있었다.
신부님의 눈길과 말이 불편했다고.
한데 내가 느낀 건 조금 달랐다.
본능 앞에서 인간은 저렇게 약한 거구나, 수도자도 예외는 아니구나, 하는 남성에 대한 재확인과
일종의 연민 같은 것이었다.
남자는 시각에 구속되고 여자는 무드에 사로잡힌다.
나는 지금도 그 신부님이 하룻밤에 보여 준 그 모습 하나로 그 신부님의 인격을
정죄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잡티 없는 인간이 어디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