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한자락

그레이스의 향기

tlsdkssk 2010. 11. 22. 08:14

그녀, 그레이스(영현)가 떠났다.

남편이 먼저 미국으로 가고 그녀는 수술 받은 허리 진찰을 위해

24일간 우리 집에 머물고 있었다.

20여년 넘게 인디언 선교를 하느라 그녀는 세속 유행과는 동떨어진

코리언 인디언이 돼 있었지만  지혜와 유순함,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아름다운 마음씨가 있어

늘 나를 감동케 하고 잔잔한 행복감을 안겨주었다.

사람에겐 저마다의 특유한 내음이 있고, 인간에겐 그런 것을 감지하는 동물적 후각이 있다.

3년 전인가 그녀가 선교사인 남편과 처음 우리 집을 찾아주었을 때

나는 그녀의 내음에 쉽게 이끌려들었다.

아무리 자주 만나도 말문 열리는 게 껼그러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첫눈에도 오래된 지인처럼 친근한 사람이 있는데, 그녀는 단연 후자였다. 

나이보다 더 늙스구레하게 차려 입은 초라한 행색에서도 그녀는 의연하고 당당했으며

그러면서도 부드럽고  달콤했다.  

아무런 치장 없이 화장기라곤 전혀 없는 맨 얼굴에서도 그녀의 타고난 귀품은 빛이 났다.

사람이란 깊이 알면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미처 발견되지 않은 치부와 결함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상대에게 품었던 환상을

거두어가는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한데 그녀에게선 지내면 지낼 수록 그윽한 향기가 스며나오는 듯 했다.

엘리에게 있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그녀는 늘 나를 따뜻히 맞으며 환히 웃었다.

나는 마치 내게 아내가 생긴 듯한 착각을 느꼈다.

미국으로 다시 떠나는 그녀에게 나의 간절한 소망을 전하였다.

글을 쓰라고, 인디언들과 생활한 것을 글로 남겨보라고,

그처럼 자연을 사랑하며 온유하고 영성 깊었던 종족이 문명인의 발자국에 짓밟혀

살아가는 모습을 글로 남기어 보라고,

기독교 선교의 미명 하에 인디언들이 겪은 수난과 고난을 기록하라고,

나도 돕겠다고....

그레이스는 비록 나보다 몇 살 나이가 어리지만 참으로 많은 울림과 교훈을 주고 떠나갔다.  

 

그녀도 나처럼 내성적인 성격이다.

그녀도 나처럼 혼자 있는 걸 즐긴다.

그녀도 나처럼 뜨거운 음식을 먹을 땐 연신 코를 푼다.

그녀도 나처럼.....

우린 이런 동질적 요소들이 숨은 그림처럼 찾아질 때 서로 킬킬대며 웃었다.

벌써 그녀가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