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화
지난 금욜에 모처럼 등산을 했다.
남편의 입원 이후 더러 산에 간 적은 있어도
그저 우두커니 산에 앉아 있다 오는 정도 였으니 등산이랄 수 없었다.
그제 올랐던 등산로는 도봉산의 보문능선~우이암~ 오봉 코스다.
그 길은 완만하기에 그리 무리가 될만한 산행은 아니었다.
게다가 날씨도 환상적으로 맑고 바람까지 선선히 불어와 산을 타기엔 최적의 조건.
한데도 나는 어찌나 힘에 겨운지 천천히 산을 올랐다.
하산 할 적엔 몸이 더 힘들어 우이암까지만 갔다 올 걸 하는 후회가 들 지경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몸이 천근마냥 무거운 게 주저 앉을 것만 같았다.
허벅지도 아프고 무릎도 아프고 어깨도 아프고 발바닥도 아팠다.
그 정도 걷고 이 정도 아프다는 건 충격적인 일.
어쩌면 내 몸이 등산 이전으로 초기화 된 건지도 모르겠다.
어제는 죽도록 몸이 힘들었다.
약국엘 가려 해도 현관을 나설 기운이 없어 진종일 누워만 지냈다.
이젠 혼자 몸이라 약을 부탁할 사람도 없는 신세.
소파에 누워 영화 채널을 돌리니 오래 전에 보았던 '타이타닉'을 하고 있었다.
전에 영화관에서 볼 때는 눈물을 흘린 기억이 없는데,
어제는 주인공 잭과 로즈의 애틋한 로맨스며 선장의 죽음및 악단 연주자들의
비장한 연주 모습 등에 가슴이 아파 그만 눈물을 줄줄 흘리고야 말았다.
누선이 젖는 정도가 아니라 흑흑 흐느껴 울었다.
곁에 남편이 있었으면 민망하여 울지 못했을 텐데
어제는 맘 놓고 울었다.
나는 본디 울보다.
하도 잘 울고 눈물이 많아 유년 시절 내 별명은 '울보'였다고 한다.
한 번 울기 시작하면 1시간 정도 운 적도 있다고 한다.
나는 전혀 기억을 못하는데 울다가 힘이 들면 조금 쉬었다 다시 울었다고 한다.
눈물 조차도 초기화 되는 건지 세월이 흐를수록 내 눈물은 늘어만 가는 것 같다.
눈물이 한 번 흐르면 잘 통제되질 않는다.
내 주변엔 펑펑 울고 싶어도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다.
그에 비하면 그래도 울보가 낫지 않을까.
눈물은 정신의 혈전을 없애는 영약이기도 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