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찾아온 남자
이상하게 상계동 집에만 오면 잠이 잘 안 온다.
큰 일 치르느라 한 동안 불면증으로 시달리며 약과 술에 의존하기도 했으나
이젠 많이 안정되고 진정되어 그런대로 잠을 잘 잔다.
허나 그건 아들 집에 있을 때의 일이고 내 집으로 오면 잠이 잘 오질 않는다.
결국 2시간 넘게 뒤척이다가 잠 잘 시간을 훌쩍 넘기고 나면
머리도 무겁고 밤을 홀딱 지새울까 두려워 약을 먹게 된다.
그 약은 정신과 의사인 친구가 처방해 준 안전한 약이나
때론 그 약으로도 잠이 오질 않아 약간의 술을 마시곤 하였다.
의사인 친구는 당연하다고 했다. 환경이 갑작스레 바뀌고 있어야 할 일들이 없어지고 하니
얼마간은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집에 있는 날이면 괜스레 일거리를 만들기도 하고 짧은 산행으로 몸을 피곤하게도 해보지만
약이 없이는 별 소용이 없었다.
한데 어제는 약 없이도 잘 잤다.
아침부터 이 일 저 일로 돌아다녔고 오후엔 북한산 길을 산책하기도 했지만
아무튼 눕자마자 나른함이 쏟아지며 곧 단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 나를 안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옭죄이진 않았으나 그는 나를 전신으로 품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별로 놀라지 않고 그가 누구인가부터 살폈다.
남편같았다. 방에 불을 꺼서 형체는 알 수 없었지만 피부에 와 닿는 감촉으로 느낄 수 있었다.
둘이는 별 말을 나누지 않았고, 나는 다만 그가 남편인가를 재확인하기 위해
그의 몸을 더듬어 보았다.
살이 통통했다. 아, 그는 바짝 야위어 죽어갔는데, 살이 통통하다니....
나는 상대의 옆구리로 손을 옮겨 그의 수술 상처를 더듬어 보았다.
그의 몸엔 식도 수술로 인해 왼쪽 어깨부터 배에 이르기까지 메스 자국이 나 있었는데
아, 놀랍게도 상처도 말끔히 완치가 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눈을 떠보니 꿈이었다.
지난 15일에도 남편의 꿈을 꾼 적이 있었다.
그는 생시보다 젊고 밝고 건강해 보였기에 꿈을 꾸고 난 기분이 개운했었다.
그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의 영혼은 평안가운데 있는 것을까.
불가에선 사람이 죽으면 49일동안 중음신으로 지내다가
생전의 업대로 다음 몸을 받는다고 한다.
가톨릭에선 성인 수준의 인간이 아니면 대체로 연옥에 가서
정화의 기간을 거친 다음 천국으로 간다고 한다.
그가 떠나간지 오늘이 꼭 한달 째이다.
아무리 꿈이라 해도 남편의 모습이 초췌하거나 불행해 보이면 내 기분이 언짢을 텐데,
늘 밝은 모습을 보여주어 감사한 생각이 든다.
내가 매일 아침마다 받치는 연도, 그리고 100일간의 연미사, 여기에 매깨비 신부님의 기도까지
합쳐져 남편의 영혼은 평화를 누리고 있는 것일까.
모쪼록 그의 영혼이 영원한 안식을 누리고 보다 승화된 영혼으로 거듭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