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곁의 두 여인
남편의 입원과 죽음을 통해 새삼 느낀 것이 몇 가지 있다.
사랑은 머리로가 아니라 몸과 가슴으로 하는 거라는 사실.
남편의 곁을 지켜준 두 여인에 대한 고마움과 그녀들이 준 감동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한 여인은 단 사흘간만 간병했던 간병 아줌마(라기보다 할머니지만),
또 한 사람은 그 간병 아줌마와 나이가 비슷한 칠순 초반의 내 외사촌 언니이다.
젊은 시절에 나는 그 언니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곁을 잘 주지 않았다.
말 하기를 좋아해 친척 집을 다니며 할 말 안 해야 할 말을 옮기는 게 싫었다.
그녀들의 공통점은 많이 배우지 못했고 가난하며 남편이 없고 자식 덕도 없다는 점.
그럼에도 조상에게 물려받은 근본 심성 덕인지
인간적 품위(수다스러움이 있긴 하나 근본 심성은 품위가 있다)가 있고
마음 씀씀이가 따듯했다.
먼저 내 외사촌 언니 얘기를 하자면, 그녀는 남편의 소식을 전해 들은 후 병원으로 달려와
내게 돈 봉투를 건넨 첫 사람이다. 집이 분당이라 꽤 먼 거리에 살고 있는데다가 노인인지라
내가 그리도 오지 말라 만류했건만 언니는 그예 병원으로 찾아왔다.
그 때 남편은 식도가 터져 피를 토하며 수술 준비중이었고, 나는 눈물 글썽한 채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아들과 전화까지 주고 받느라 정신이 빠져 있었기에 언니가 와 준 게 하나도 고맙거나 반갑지 않았다.
"언니, 왜 왔어? 오지 말랬잖아. 와 봐야 내 신경만 쓰일 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구."
나는 눈물 글썽이는 내 꼴을 보이는 게 민망하여 짜증스럽게 말했다.
내 몰골을 지켜보곤 엄마에게 달려가 미주알 고주알 고해바칠 사실이 싫었던 것이다.
그러잖아도 매일 수 차례식 전화하여 근황을 묻는 친정 엄마에게 나는 괜찮으니
염려 말라고 하던 참인지라 그녀가 엄마에게 늘어 놓을 수다가 미리 신경 쓰였다.
그러자 그녀는,
"그래, 난 괜찮아. 내 신경 쓰지 말고 이거나 받아둬." 하며 흰 종투를 건네었다.
나는 목소리를 한 옥타브 더 올리며 짜증을 내었다.
"언니는 돈도 없으면서 이건 다 뭐야? 싫어 안 받을래."
언니가 다시 쥐어주며 말했다.
"니가 기운 차려야지. 이 돈으로 점심이나 사 먹어라. 이런 큰 일 당하면 사람이 많이 있어야 하는데,
어떡하니 너 혼자 동동거리고 있으니...."
언니는 며칠 후에도 또 다녀갔다. 남편은 잠이 들어 있고 내가 집에 잠깐 다니러 간 사이였다.
그 날 처음 온 간병 아줌마가 전해주는 까만 비닐 봉투가 아니었다면
나는 언니가 다녀간 사실도 몰랐을 것이다.
언니는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녀갔으므로.
비닐 봉투 안엔 요구르트와 요플레가 몇 개 들어 있었다.
나는 언니에게 전화하여 또 짜증을 내었다.
"언니, 제발 이러지좀 마! 날도 더운데 노인네가 병이라도 나면 어쩔려구 그래?"
그후로도 언니는 나 몰래 슬쩍 슬쩍 다녀갔다.
남편이 의식불명으로 중환자실에 있어 다녀가 간 사실을 모르는데도 그녀는 자꾸 자꾸 다녀가며
내가 늘어 놓는 지청구에 이렇게 대답했다.
"내 마음이다. 넌 내 동생이잖아. 그리구, ** 아버지가 너무 불쌍해서 내가 가만 있을 수가 없다."
언니는 장례를 치르는 사흘 동안 내리 장례식장에서 함께 지내며 내가 아침에 세수를 하면
"너는 죄인인데 무슨 세수를 해. 남편 죽은 사람은 세수 하지 않는 거야" 하고 궁시렁 거리며
옛날 노인 같은 잔소리를 늘어 놓기도 하더니 장지까지 함께 갔다.
또 한 여인 간병 아줌마는 단 사흘간만 남편 곁에 있어 준 사람이다.
처음 수고를 해 준 간병 아줌마는 내가 그리도 잘 대해주었건만
성격이 모가 나선지 남편을 불편하게 하더니 제 발로 걸어나갔으나
두번 째 온 간병 아줌마는 오자마자 남편의 두 다리를 주물러주며 우리 부부를 감동 시켰다.
그녀가 온지 사흘 되던 날 남편은 심장이 멎어 다시 중환자실로 가게 되는 바람에
더 이상 간병인이 필요 없게 되었으나 그녀는 다른 환자 간병을 하면서도
틈틈이 남편의 병상을 찾아와 주었다.
의식 없는 남편이 그녀의 정성을 알아줄 리 만무했고,
내가 다녀 간 후에 그녀가 오면 나 또한 그녀가 다녀 간 사실을 알 수 없었지만
그녀는 누가 알거나 모르거나 자기의 사랑을 몸으로 보여주었다.
일면식도 없는 관계로 만나 고작 사흘간만 함께 있었을 뿐인데도
그녀는 자기 일처럼 남편과 나에게 정성을 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