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한자락

허전한 평화

tlsdkssk 2010. 7. 9. 07:29

아들 집에 머물다가 어제 밤  닷새만에 내 집으로 왔다.

남편의 영정을 향하여,

"나 왔어. 집 잘보고 계셨남?  혼자 심심했겠네. 근데 집이 참 깨끗하다...."

어쩌고 저쩌고 중얼거린 뒤 사진을 한 번 안아주고 소파에 앉아 있으려니

남편이 있었다면 지금쯤 내 스트레스 지수가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화장실이 나를 미치게 할 것이었다.

남자가 소변보는 자세는 여자와 다르기 때문에

변기엔 늘 오줌 자국이 남아 있고, 그로 인해 냄새가 났었다.

게다가 남편은 소변 본 후 물을 잘 내리지 않고  딴엔 물을 아낀다고

바가지에 물을 받아 붓곤 하였기에 이 문제로 우리는 자주 다투었다.

아낄 것을 아껴라, 는 내 일갈에 그는 자기 혼자 있을 때만 그러겠다고 맞섰다.

그럼 나는 지지 않고,  집 안에 배는 악취는 어쩌라고? 하며 쏘아부쳤다.

뿐인가 그렇게 교육(?)을 했건만 세면대는 늘 비누 때가  엉겨 있어

나는 피곤한 몸으로 물 콸콸 틀어 화장실 청소부터 하는 것이 순서였다.

이런 식으로 소소하게 부딪치는 일들이 어디 한 두가지 였나.

부부 싸움이란 이런 소소한 문제로 비롯되는 게 다반사이다.

허나 작은 불씨가 숲을 태운다고 소소한 문제는 결코 소소하지만은 아닌 것이다.

이제 이런 일로 다툴 일은 없어졌다.

허전한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평균적으로 여자의 수명이 남자보다 길지만

나는 간혹 남편 보다 일찍 가기를 소망한 적도 있었다.

그에 대한 원망이 치밀 때면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겠으나

당신은 나보다 10년만 더 살고 죽으라고

나직히 쏘아부치곤 했다.

하지만 아들 집에 있다가 내 집으로 돌아오면 이런 저주(?)가 절로 수그러들곤 하였다.

내가 먼저 죽으면 알량한 남편의 꼴이 어찌 될 것인가.

집안은 필시 엉망이 되고 악취가 풀풀 풍길 것이며

독립적이지 못한 남편은 정신적으로 폐인이 되어 자식에게 흉한 꼴을 들어내 보일 게

불을 보듯 뻔했다.

 

그래, 당신이 먼저 가길 잘 한 거야.

아직은 이른 나이라 아쉽긴하지만 똥싸 뭉개는 날까지 사는 것 보다야 백 번 낫지.

당신은 죽어서 내 관심과 사랑을 도로 차지하게 되었고

나는 늙은 아들이 사라져 허전한 평화를 누리게 되었네.  

우리 좀 쿨하게 생각하자.

당신이나 나나 너무 애석해하지만 말자구.

오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