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한자락

이발소 그림

tlsdkssk 2010. 4. 14. 12:07

언젠가 티비 프로에서 유명 화백의 유럽 여행이 소개된 적이 있었다.

나는 집안 일을 하느라 줄곧 앉아 보지 못하고 흘끔거리며 보았는데

그는 거리의 화가에게 초상화를 부탁하고 거리의 그림을 사기도 했다.

한데 그 그림이라는 것이 '이발소 그림' 수준이었다.

나는 좀 의아했다.

유명 화백이 왜 저런 조악한 그림을 사는 것일까?

 

이발소 그림이라면 유명 화가의 복제화로부터  상상으로 그린 풍경화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가 있다.

내 어린 시절엔  밀레의 <만종>이나 <이삭줍기>가 이발소 그림의 대표 그림이었다.

다섯살 무렵인가, 처음 아버지를 따라가 본 이발소에는 밀레의 <만종>이 걸려 있었는데,

아버지는 그 그림이 아주 유명한 사람 그린 좋은 그림이라고만 하셨다.

우중충 한 것이 내 눈엔 그닥 좋아보이지 않았다.

이발소에 흔히 걸려 있던 그림 중엔 물레방아 도는 평화로운 산골 풍경도 많이 있었다.

높은 산이 배경을 이루고 오솔길이 나 있고, 한쪽으론 물레방아가 돌고

초가집도 보이고 초가 마당엔 닭들이 놀고....

나는 그런 그림이 훨씬 좋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이발소 그림의 수준을 알게 되었고

유치한 그림=이발소 그림이란 등식이 성립되었다. 

 

유명 화백은 이발소 그림을 이것 저것 들추더니 한 그림을 골라내었다.

놀랍게도 우리의 이발소 그림과 분위기나 정서가 비슷해 보였다.

우리 산보다 좀 더 높고 산 봉우리에 눈이 쌓인 게 다르다면 다를까. 

화가가 말했다.

"저는 이발소 그림을 좋아합니다. 이런 그림을 보면 마음이 평화로워지잖아요.

어릴 때 이발소에 가면 이런 그림이 있었고, 그 그림을 보면 마음이 평화로웠죠."

순간 그 화백의 순수하고 겸허한  마음이 잔잔한 감동을 일으켰다.

 

나는 남의 좋은 글들을 접할 때 마다

그림으로 치자면 내 글이 이발소 그림 수준이 아닐까 하는

회의에 젖곤 하였다. 

그런 생각이 들 때 마다 사람들의 수준은 여러 층이니

내 글을 좋아하고 공감해줄 사람도 있는 법이라며 자위를 하면서도

자괴심을 버릴 수 없었다.

결코 엄살이나 내숭이 아니다.

남의 글을 읽다보면 정말 감탄스런 문향과 폭너른 사색을 뿜어내는 글들이 드물게 보인다.

한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과연  내 글이 이발소 그림 수준은 되었는가, 하는 자성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