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소 그림
언젠가 티비 프로에서 유명 화백의 유럽 여행이 소개된 적이 있었다.
나는 집안 일을 하느라 줄곧 앉아 보지 못하고 흘끔거리며 보았는데
그는 거리의 화가에게 초상화를 부탁하고 거리의 그림을 사기도 했다.
한데 그 그림이라는 것이 '이발소 그림' 수준이었다.
나는 좀 의아했다.
유명 화백이 왜 저런 조악한 그림을 사는 것일까?
이발소 그림이라면 유명 화가의 복제화로부터 상상으로 그린 풍경화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가 있다.
내 어린 시절엔 밀레의 <만종>이나 <이삭줍기>가 이발소 그림의 대표 그림이었다.
다섯살 무렵인가, 처음 아버지를 따라가 본 이발소에는 밀레의 <만종>이 걸려 있었는데,
아버지는 그 그림이 아주 유명한 사람 그린 좋은 그림이라고만 하셨다.
우중충 한 것이 내 눈엔 그닥 좋아보이지 않았다.
이발소에 흔히 걸려 있던 그림 중엔 물레방아 도는 평화로운 산골 풍경도 많이 있었다.
높은 산이 배경을 이루고 오솔길이 나 있고, 한쪽으론 물레방아가 돌고
초가집도 보이고 초가 마당엔 닭들이 놀고....
나는 그런 그림이 훨씬 좋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이발소 그림의 수준을 알게 되었고
유치한 그림=이발소 그림이란 등식이 성립되었다.
유명 화백은 이발소 그림을 이것 저것 들추더니 한 그림을 골라내었다.
놀랍게도 우리의 이발소 그림과 분위기나 정서가 비슷해 보였다.
우리 산보다 좀 더 높고 산 봉우리에 눈이 쌓인 게 다르다면 다를까.
화가가 말했다.
"저는 이발소 그림을 좋아합니다. 이런 그림을 보면 마음이 평화로워지잖아요.
어릴 때 이발소에 가면 이런 그림이 있었고, 그 그림을 보면 마음이 평화로웠죠."
순간 그 화백의 순수하고 겸허한 마음이 잔잔한 감동을 일으켰다.
나는 남의 좋은 글들을 접할 때 마다
그림으로 치자면 내 글이 이발소 그림 수준이 아닐까 하는
회의에 젖곤 하였다.
그런 생각이 들 때 마다 사람들의 수준은 여러 층이니
내 글을 좋아하고 공감해줄 사람도 있는 법이라며 자위를 하면서도
자괴심을 버릴 수 없었다.
결코 엄살이나 내숭이 아니다.
남의 글을 읽다보면 정말 감탄스런 문향과 폭너른 사색을 뿜어내는 글들이 드물게 보인다.
한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과연 내 글이 이발소 그림 수준은 되었는가, 하는 자성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