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랄한다'
그날, 그녀와 전화 통화를 주고 받으며 내 입에서 나온 소리다.
나는 평소 욕을 잘 안하는 편이다.
인격자라서가 아니라 서울 깍쟁이의 기본 정서가 아닌가 싶다.
그 말을 해 놓고 나스스로 깜짝 놀랐지만 정말 적절한 대꾸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이 다 후련했다. 그녀도 깔깔거렸다.
그녀 역시 자기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그녀는 나와 오랜 친분을 나눈 교우이다.
같은 종교라는 것 외엔 도무지 코드가 안 맞는 인간이지만
그녀의 순수성과 착한 마음씨를 높이 사기에 교분이 가능했다.
그녀는 나보다 훨씬 먼저 남편과 사별했고
슬하엔 두 아들이 있으며 둘 다 장가를 가서 며느리도 둘이나 있다.
그녀는 나와 달리 아들과 살기를 바랐지만, 며느리들이 시어머니를 모시기 원치 않았기에
혼자 살고 있다.
그동안은 작은 아들과 함께 살아왔지만, 얼마전 작은 아들이 결혼 하고 부터는
혼자 신세가 되었다.
그 작은 아들을 장가보내던 날 그녀는 몸부림을 치면서 울었다고 실토했다.
아들이 신혼 여행을 떠날 때는 차를 부여잡고 싶었다 한다.
나도 아들을 가진 엄마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약간의 허전함이야 있겠지만 뭐 그리 몸부림까지 치는가 말이다.
이건 필시 그녀의 문제일 것이다.
내가 보기엔 그녀에겐 작은 아들이 아들인 동시 연인인 것 같다.
그녀는 아들과 분가한 이후로 더 자주 운다고 한다.
이따금 뜬금없이 전화하여,
"안나야, 니는 안 외롭나?"
"니는 안 우나?" 한다.
며칠 전 전화 통화 중에도 그녀는 몸부림을 치면서 울었노라 했다.
그 때 웃음과 함께 내 입에서 나온 소리가 "지랄한다."였다.
플로벨의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에 의하면
어느 한가지를 표현할 때 그것에 어울리는 단어는 한가지 밖에 없다고 한다.
그 말의 뜻인즉 그만큼 표현을 정확히 하라는 주장인데
지금 생각해도 지랄이라는 말은 참으로 적절했던 것 같다.
'지랄'이라는 다소 거친 단어를 쓰긴 했으나
그건 악의적이기에 앞서 그녀에 대한 연민을 반어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하지만 만약 그녀가 계속 지랄을 한다면,
그리고 그 지랄에 대한 식상한 보고를 자주해온다면,
내 입에선 지랄으론 성이 차지 않아 '찌랄'이란 말이 나올 것 같다.
그러니 A씨, 제발 지랄 좀 하지 마세요.
그건 아들과 며늘의 문제이기에 앞서 바로 당신의 문제일테니까요.
포기할 것과 놓아줄 것에 대한 미련을 끊지 않는 한 당신의 지랄병은 낫지 않을 겁니다.
'내 마음 한자락'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행복 전도사의 자살 (0) | 2010.10.08 |
---|---|
서창을 바라보다가 (0) | 2010.10.01 |
초기화 (0) | 2010.09.26 |
노래치의 노래 (0) | 2010.09.09 |
평범하게 산다는 것 (0) | 2010.09.03 |